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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CD를 억지로 뺏다시피 해서 Tudor Lodge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억지가 전혀 부끄럽지 않은 보람(!)을 가질 수 있었음에 솔직히 기뻤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컸었는데, 달리 보답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몹시도 듣고 싶었던 Tudor Lodge...
그들의 음악을 듣노라면 비갠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슬픔이나 아픔을 씻고 바라보는 하늘, 탁한 공기의 실내와 거리를 넘어 한적한 교외를 거니는 것이지요. 그들의 음악은 일견 평이하지만 그 평범함이 결코 팝적인 단순함은 아니었습니다.
CD의 자켓부터가 내 마음을 끄는 것이었습니다. 표지만 보면 일견 싸이키델릭 밴드의 그것을 연상시킵니다. 특히나 뒷면은 클라우스 부어만(한때 Manfred Mann의 베이시스트로 활동)이 그렸던 Revolver의 자켓과 비슷한 스타일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흑백만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LP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자켓이 '감상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Tudor Lodge는 CD를 갖고 있음에도 싸이키델릭한 분위기의 흑백 디자인은 마음을 끄는 것이었습니다. Gatefold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는 LP는 자켓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앨범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의 아름다고 밝은 색채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앨범을 구한 그날 밤 몇몇 곡들을 녹음해 계속 갖고 다니며 듣고 있습니다. 자극적인 노래를 즐겨 들었다면 더욱 권하고 싶은 Tudor Lodge입니다.
Tudor Lodge는 Self Title의 이 앨범 하나만을 내고 사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한장으로도 그들의 노래를 듣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주고 따뜻하게 할 것입니다.

And I search for myself
Maybe you can help me
Find myslef and teach me my own mind...

Tudor Lodge :

Lyndon Green / Vocal, Guitar
John Stannard / Vocal, Guitar
Ann Steuart / Vocal, Guitar, Piano, Flute

(세션 파트로는 Pentangle의 빼어난 연주자인 Danny Thopmpson과 Terry Cox가 베이스와 드럼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는 바순, 클라리넷, 오보에, 알토 플룻, 아프리칸 드럼,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이 세션맨들에 의해 연주되고 있습니다.)

It All Comes Back to Me
Tudor Lodge의 시작은 꽤 클래시컬합니다. 관악기의 짧은 인트로가 끝나면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Ann Steuart의 보컬로 노래가 시작됩니다. 첫곡으로는 좀 처지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본다면 그다지 이상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가로운 숲속의 대화같은 곡입니다.

Would You Believe?
첫곡 보다는 좀 경쾌한 화음으로 이루어진 곡입니다. 드럼이 들어가면서 곡조는 꽤 즐겁고 낭만적으로 펼쳐집니다. 비교적 변화가 많은 상큼한 느낌의 곡입니다. 끝부분은 관악기의 짧고 아름다운 연주로 맺어집니다.

Recollection
아마도 부클릿에 나와 있는 아프리칸 드럼이 사용된 곡인가 봅니다. '봉고'와 비슷한 소리 같습니다. Ommadawn 같은 곡에서처럼 다이내믹한 것은 아니고, 노래의 경쾌한 흐름을 뒷받침하는 정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남자들의 목소리가 더 아름다운 곡입니다.^^ 특히나 솔로 파트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아마도 Lyndon Green의 보컬로 생각됩니다.)  플루트와 바순(?)의 간주도 매우 듣기 좋습니다.

Two Steps Back
어쿠스틱 기타의 잔잔한 연주로 시작되는 Two Steps Back은 Tudor Lodge다운 여유가 보이는 노래제목이 멋진 곡입니다. Ann Steuart의 솔로 보컬만 등장합니다.

Help Me Find Myself
<Help>, <Rubber Soul> 같은 중기 비틀즈의 경쾌하고도 서정적인 곡들을 연상케 합니다. 가볍고 발랄한 이 곡에서는 Moody Blues의 For My Lady 같은 스타일의 보컬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시작 부분의 바순이 비온 뒤의 맑은 공기처럼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2)

Nobody's Listening
곡마다의 특색이 부족함은 Tudor Lodge의 단점이라고 해야 할까요. 앞의 노래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이 곡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사용되어 좀더 풍성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뒤로한 채 그들은 어딘가로 떠나가는가 봅니다.

Willow Tree
갑작스레 분위기는 돌변하여 노래는 엄청난 불안을 야기합니다.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의 음악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긴장감 가득한 연주이지요. 침투, 미행, 어둠, 음모, 위험... 이런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1분여의 불안과 긴장이 지나가면 곡조는 너무도 슬프고 아름답게 흘러갑니다. 죽음을 소재로 한 곡이어서인지 악기들조차 몹시도 구성진 소리를 냅니다. 역시 바순의 낮고 짧은 울림이 가슴에 깊이 닿는 듯 합니다. 바순이 연주하는 곡조는 바이올린의 피치카토 연주로도 반복되는데 가야금 같은 느낌도 듭니다. 종반부는 바순과 플룻, 그리고 오보에의 연주로 마무리됩니다. 이 앨범에서 여러모로 가장 어둡고 슬픈 노래이지만 참 아름답습니다.

Forest
비는 그치고 숲에는 햇살이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Willow Tree의 슬픔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좁은 숲속길을 즐겁게 산책하는가 봅니다. 그 맑은 공기가 담배연기 자욱한 나의 방에도 가득했으면 싶습니다. '소리'로 이루어진 삼림욕이라 해야 하겠습니다.

I See a Man
전원적인 분위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일까요. 전쟁터에서 돌아온 젊은 병사의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노랫말에서 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좀 피상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평범한 삶이 저물어감을 담담히 그려낸 곡이겠지요.

The Lady's Changing Home
이 '비자극적인' 앨범 속에서 예외적인 곡입니다. 좀 무거운 단조의 분위기와 장조가 교차하는 멜로디인데 시작 부분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노래를 여는 둔탁한 베이스가 조금은 비트가 강한 곡임을 예견케 합니다. 다른 곡들과는 달리 일렉트릭 기타의 애드립을 비교적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드럼도 제법 강한 비트로 연주 됩니다. 보컬 하모니도 아름답지만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와우와우 이펙터를 사용한 일렉트릭 기타가 듣기 좋은 곡입니다. '와우와우'하면 생각나는 Cream의 White Room에서처럼 연주가 특별히 빼어나다기 보다는 곡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며, 60년대의 회상ㅡ싸이키델릭 포크록의 잔재를 느끼게 합니다.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트랙 가운데 하나입니다.

Madeline
차분하고도 서정적인 기타 연주곡입니다. 슬픔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곡조는 Paul McCartney의 Family Way 테마와 비슷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가을의 소리라고 해야겠지요.

Kew Gardens
Willow Tree, The Lady's Changing Home과 Madeline이 일탈로 느껴질 만큼 무던하고 평온한 곡조는 Kew Gardens로 돌아오면서 다시 이어집니다. 어떠한 자극도 느끼기 힘든 소박함이지요. 그리고 잔잔하고 평이한 곡조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은 Tudor Lodge의 거의 모든 노래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1999. 6. 6. jj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