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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는 여러면에서 독특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나라인듯 싶습니다. 오래도록 영국에 핍박받아온 탓일까요... 그들의 노래 속에는 "한"이 서려 있습니다. 켈틱 사운드나 아일랜드 출신의 포크 뮤지션들이 국내에서 각광받는데는 이러한 까닭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아일랜드인임을 절대 잊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목도 잊었지만 제라르 드 빠르디유가 나온 아일랜드 독립에 관한 영화가 생각나는군요.  '아버지의 이름으로'도.
O'Connor 역시 자신의 노래 속에서 아일랜드 출신임이 쉽게 드러나는 가수입니다. 괴팍스럽고 반항적이지만 청승맞기도 하고 차갑고 격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Universal Mother>를 듣는 동안 그녀가 희망하는 것은 사랑과 평온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가슴 속에 맑고 푸른 강물이 흐르는 것 같습니다. 차가움 속으로 몰래 흐르는 따뜻함입니다.
1990년에 있었던 Roger Waters의 <The Wall Berlin Live>에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Mother를 노래하던 그녀... 세상에 많은 가수 중의 한 사람일 뿐이지만 O'Connor에 관한 내 느낌은 언제나 각별한 것이었습니다.

Germaine
노래가 아니라 Germaine Greer라는 사람의 연설입니다.(The Whole Woman이란 책을 쓴 작가라고 합니다.) 아마도 TV 대담이나 강연에서 '여성의 역할'이나 '여성의 문제'에 관해 역설한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혀 '노래'는 아닌 트랙입니다. 하지만 Greer의 언급을 첫번째 트랙으로 선택한 것은 O'Connor 자신이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Fire on Babylon 
Fire on Babylon은 사실상 첫번째 곡이자 가장 격한 노래입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대부분의 노래들이 가진 차분함을 고려한다면 감정의 폭발에 가까운 것이겠지요.
Germaine Greer의 이야기가 끝나면 곧장 에코섞인 브라스가 울려퍼지며 노래는 시작됩니다. 차갑고도 격렬한 곡조 속에서 그녀는 때로 가녀린 목소리로, 때로 거친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이 곡은 그녀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로 알려져 있는데 뮤직 비디오에서 보았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자면 그녀는 흔들리는 장난감 집 속에서 노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곡에는 샘플링된 Miles Davis의 Dr. Jekyll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아마도 인트로의 브라스 파트 같습니다.)

John I Love You 
이 앨범에서 오코너는 짙은 모성애와 가족에 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려 노력하는데 그 시작곡이라 해야 하겠습니다.(이 노래 속의 John은 자신의 남편인 John Reynolds입니다.) Fire on Babylon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맑고 투명한 노래 속에서 행복한 꿈을 꿉니다.
피아노와 첼로가 평화로운 분위기를 주도하며 주인공(John)은 차분히 드럼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My Darling Child
자신의 아이(Jake)에 관한 사랑을 담은 예쁘장한 곡입니다. Universal Mother,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Am I a Human?
오코너의 아들 Jake Reynolds의 목소리만 담겨 있는 짧은 노래입니다. 노래 자체가 의미 있다기 보다는 함께 하고픈 그녀 자신의 애정 표현이겠지요.

Red Football
연이어 펼쳐지던 세 곡의 사랑의 노래가 끝이나면 비장한 결의로 노래하는 핍박받는 여인의 선언이 시작됩니다. 그 여인의 사무치는 한은 섬뜩한 느낌을 줄만큼 차가운 결의를 다집니다. 
<The Wall> 앨범의 The Trial처럼 약간은 오페라적인 구성을 가진 곡입니다. 빨간 축구공을 함부로 차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부서지기 쉬운 크리스마스 트리의 구슬도...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 너머에서 오래도록 독기품은 여인의 다짐입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남자가 '그녀'를 축구공처럼 차고 있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ㅡ 나도 물론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ㅡ 그녀의 마음을 그렇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녀가 바라는 것도......
의외로 샹송이나 곡마단의 노래 같은 분위기가 있는 이 노래는 오코너의 차가운 목소리에 꼭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일렉트릭 기타 보다는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마무리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All Apologies
Nirvana의 곡을 오코너가 맑은 목소리로 노래합니다. 일렉트릭 기타 애드립이 이끌어가는 Nirvana의 노래와는 달리 어쿠스틱 기타만의 연주가 차분한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대개의 노래에 있어 악기 보다는 오코너의 목소리를 전면에 부각시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그 효과는 성공적인 것이었습니다. Evrything's my fault. I'll take all the blame...

A Perfect Indian
이 앨범에서 가장 애조띤 발라드입니다. 피아노 연주가 뜻모를 슬픔을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켈틱 포크 뮤직이나 아일랜드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서러움과 슬픔은 우리의 정서에도 잘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피아노 반주와 오코너의 투명한 목소리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곡입니다. 나를 몹시도 가슴 아프게 만드는 가사와 곡조입니다. 모두가 험난한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Scorn not His Simplicity
다시 John I Love You와 My Darling Child의 마음으로 돌아간 듯 사랑과 연민을 노래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다른 곡에서와는 달리 감기에 걸린 것 같은 촉촉하게 젖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가끔씩 파격적인 행동으로 매스컴을 타곤 하는 오코너입니다만 그녀는 ㅡ 그것이 종교적인 것이든 아니든 ㅡ 믿음이 깊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내에서 발매된 이 앨범에선 그녀의 바디 페인팅 사진이 삭제되고 다른 사진으로 대체된 것이라고 합니다.)

All Babies 
사랑스런 아기들을 위한 축복과 연민의 노래입니다. All babies are born saying god's name, 이 노래 속에는 단란한 가정의 꿈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에 관한 더 많은 애정과 관심, 신앙을 강조합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하여, 아이들을 울게 만들지 않기 위하여. 어둠을 뚫고 새벽을 달려 다가오는 희망의 빛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In This Heart 
찬송가의 분위기를 가진 이 곡은 그만큼이나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무반주 남성 코러스의 뒷받침 속에 오코너의 목소리가 절절히 이어집니다. 
This is my grief for you, for only the loss of you. 
The hurting of you, my love, my love, my love...

Tiny Grief Song 
한마디로 청승맞은 노래입니다. 몹시도 부서진 가슴을 가진 여자의 비탄입니다. 외롭고 괴로울 땐 이런 노래 들으면 안되겠습니다. 느린 동작으로 약봉지를 여는 소리가 들릴 것 같습니다.

Famine 
오늘날 아일랜드의 척박함을 노래한 곡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오코너의 앨범과 노래 가운데 유일하게 랩으로 이루어진 곡입니다.
이 곡에선 Beatles의 Eleanor Rigby 멜로디가 사용되며, 오코너의 랩에 힙합 리듬과 스크래치 효과를 사용한 댄스비트로 이어집니다. 그녀 나름의 스타일로 90년대의 음악을 적절히 잘 수용한 노래이지요. 
하지만 All the lonely peple, where do they all come from이라고 노래할 때마다 들리는 늑대의 울음소리는 좀 넌센스 같습니다.^^ 그래도 그녀의 목소리는 꽤 지적으로 들립니다.

Thank You for Hearing Me
무반주의 성가곡이나 찬송가처럼 시작되는 이 노래는 베이스와 드럼이 들어가면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80년대 뉴웨이브 스타일의 비트를 가진 느린 템포의 곡임에도 다이내믹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Fire on Babylon의 연주와 비슷한 방식입니다만 증오와 반항 대신에 고통으로 다져진 마음이 가진 희망을 노래합니다. 
베이스 연주가 매력적인 이 노래는 강물의 흐름같은 조용한 효과음 속에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습니다.

<Universal Mother>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 한곡 한곡이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상처와 고통 너머로  평안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가녀리고도 모진 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앨범을 두어번 다시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들어서인지 모두가 새삼스러웠고 처음처럼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Thank You for Hearing Me의 뮤직 비디오에서처럼 푸른 강물을 따라 흘러가던 그녀의 투명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눈...
모두가 내 마음을 열게 하는 노래들이었으며, 차갑고도 따뜻한 그녀의 세상입니다.

There are rays on the weather
Soon these tears will have cried
All loneliness have died
My love, my love, my love...
<In This Heart>
 

1999. 6. 12. jjlee.
 

PS.
오코너 자신의 언급에 의할 것 같으면 이 앨범은 헤드폰으로 들었을 때 가장 훌륭하게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나도 가끔 그렇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