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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고 있는 것만 해도 세 종류의 Lily of the West가 있습니다. 제목도 제각각 다르고 곡조, 가사도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느낌은 어쩌면 모두가 같은 것입니다.

가장 먼저 들었던 노래는 Bob Dylan의 것이었습니다. 1973년에 발표된 <Dylan> 앨범에 수록된 이 곡에서는 Bob Dylan의 꽤 멜랑콜리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구전가요'의 분위기가 아주 많이 느껴지는 곡이지요.
간단한 드럼과 베이스 연주, 그리고 하모니카와 아코디언 풍의 오르간 연주, 조금은 촌스런 느낌을 주는 여성 코러스가 이 곡을 더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제목은 Lily of the West입니다.

그 다음으로 들었던 것은 1962년에 발매된 <Moving>이라는 Peter, Paul and Mary의 앨범에서였습니다. Puff, the Magic Dragon이라는 예쁜 노래와 Gone the Rainbow가 들어있는 앨범입니다.
이 앨범에서 Flora를 들었을 때는 순간적으로 헷갈렸습니다. "귀에 익은 노래인데 뭐더라..." 하는 아주 짧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Dylan의 노래에 비해 좀 촌스럽고 방정맞은 느낌이 많은데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습니다. 칙칙폭폭(?) 기차 타고 다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리듬입니다.

세번째는 1993년에 발매된 Pentangle의 <One more Road> 앨범에 수록된 The Lily of the West입니다.
Pentangle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아왔던 Bert Jansch는 Bob Dylan의 앨범 어딘가에도 참가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곡 역시 Dylan의 노래에 가깝습니다.
Pentangle의 노래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Bert Jansch는 그다지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독특한 목소리로 Omie Wise를 불렀던 주인공이라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를 좋아합니다.
Dylan의 Lily of the West가 허무한 느낌의 곡이라면 Pentangle의 The Lily of the West는 주인공의 비장미가 느껴지는 곡입니다. 진짜 노래 속의 주인공라면 이런 투로, 이런 목소리로 노래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얼굴도 좀 그렇습니다.^^)

세 가지의 조금씩 다른 분위기를 가진 노래들은 가사에서도 편차를 보입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Peter, Paul and Mary의 Flora가 오리지널 곡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은데, 그 속에서 주인공의 라이벌은 'a man of low degree'이며 그가 플로라와 키스하는 순간을 목격한 주인공은 이성을 잃고 단검을 뽑아듭니다. 하지만 Dylan과 Pentangle의 노래 속에서 플로라가 몰래 만난 남자는 "a man of high degree"였고 그것은 주인공의 열등감과 질투를 더욱 자극하여 살의를 부추겼겠지요.
라이벌을 죽이는 대목은 노래의 '한 절'을 이루면서 꽤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Flora에서는 "I'd killed a man for Flora, the lily of the west."라 이야기하고, Pentangle은 "Now go, my lovely Flora, the Lily of the West"라고만 하며, Dylan은 "All this for lovely Flora, the Lily of the West"라고 노래합니다. 이외에도 조금씩은 다른 부분들이 있지만 주된 이야기는 모두가 똑같습니다.

Way down in yonder shady grove, a man of high degree
Conversing with my Flora there, It seemed so strange to me
And the answer that she gave to him, it sore did me opress
I was betrayed by Flora, the Lily of the West

구식(?) 남자들은 모두가 비슷한 느낌을 갖는 순간이겠지요. 이 곡의 내용은 간단히 말해 '치정살인'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꽤 거친 남자로 즐거움(?)을 찾아 여기 저기 떠돌다 Flora라는 예쁜 여자를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의 품으로 갑니다. 
이 노래속의 '싸나이'는 이런 데서 배신당했다고 분노하며 뭔가 행동을 보여주려는 사람입니다. 이성을 잃은 주인공은 그 남자를 죽이고 체포되어 법정에 서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Beatles의 어느 노래 속에 이런 가사가 있지요.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너가 죽어버리는 게 나아." 또다른 Beatles 노래 속의 Rocky도 비슷한 질투심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 이 노래 속의 남자도 그런 심정이었겠지만 그는 더 건달 기질이 강한 남자로 라이벌을 죽였습니다. 그는 성공했고 또 실패했습니다.
장미빛 뺨과 진홍빛 입술을 가진 렉싱턴 출신의 플로라, 그는 이 모든 행동이 플로라를 위한 것이었다 생각하며, 체포되어 재판받는 순간에도 자신의 삶과 안식을 앗아가버린 "믿지 못할 플로라"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통속적인 이야기로 구전가요적인 요소와 매력을 모두 갖추고있습니다

Still I love my faithless Flora, the Lily of the West.
 

1999. 7. 25. JJ.Le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