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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mals의 노래들은 대개 좀 촌스러운 편이며 거의가 크게 히트할 스타일의 곡이 아닙니다. Doors나 Rolling Stones에서 볼 수 있는 세련된 Blues Rock은 결코 아니며 그것은 연주의 측면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 촌스러움은 Eric Burdon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에 더욱 잘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더 솔직하고 더 다정다감하고 더 폐부에 닿는 듯한 울적함 같은 것입니다.
<Every One of Us>는 같은 해에 발표된 <Winds of Change> 앨범의 몇몇 트랙이 가진 강렬한 싸이키델릭 사운드와 대비되는 따뜻한 감성과 블루지한 전개로 또다른 매력을 가진 앨범이라 하겠습니다.

White House
Eric Burdon의 목소리가 모처럼 경쾌하게 들리는 노래입니다. 힘과 무게는 Animals의 기본, 새삼 언급할 일도 아니며 퍼커션 연주가 활기를 북돋아주며 피아노 소리가 꽤 예쁩니다. 
시작 부분의 보컬 멜로디가 묘하게도 Donovan의 싸이키델릭 넘버 Hurdy Gurdy Man과 꽤 비슷합니다.

Uppers and Downers
30초도 안되는 무반주의 짧은 노래로 오페라 흉내를 냅니다. 리드 보컬이 Eric Burdon인지는 의심스럽습니다.

Serenade to a Sweet Lady
Animals로는 드문 연주곡인데... 몽환적인 흐름이지만 정열이 부족한 탓인지 맹숭맹숭한 느낌입니다.

The Immigrant Lad
슈퍼맨도 배트맨도 아닌 평범한 남자의 자조섞인 한탄처럼 들리는 노래입니다. 뱃고동 소리, 갈매기 소리...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부두에 앉아 바다 저편을 멍하니 바라보는 한 사내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변한 것은 없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일년 전에 내가 핏기 없는 눈으로
바라보던 바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노래속의 정황이 어떤 것인지 가사가 없어 모르겠지만 마음대로 상상하건대 그와 그녀는 배와 부두, 또는 바다를 사이에 둔 지척의 거리를 넘어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타 반주는 70년대 우리 가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본적인 슬로우 록(5-3-2-1-2-3) 주법을 들려주는데... 쉽사리 감상에 빠지게 하는 것이지요. Eric Burdon의 굵고도 간결한 목소리가 참 듣기 좋습니다. Animals 특유의 염세적인 보컬이지만 훨씬 부드러워 Hotel Hell 같은 죽을 맛은 아닌 게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6분 17초의 비교적 긴 곡인데 뒷부분은 좀 지루하게도 대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Year of the Guru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싸이키델릭적인 느낌이 강한  블루스 록입니다. 스트레이트한 보컬이 아주 멋지군요. 어울리지 않는 경망스러움이 없지 않지만 Eric Burdon이기에 낯간지러운 느낌이 아닌 '묵직한 경쾌함'의 매력입니다. White House와 함께 힘이 실린 "비교적" 밝은 분위기의 곡입니다.
만약 다른 밴드가 이 곡을 만들고 불렀다면 참 경박한 것이었음 만큼은 틀림없이 보증할 수 있습니다.

St. James Infirmary
Year of the Guru의 빠른 템포는 무겁고 느린 베이스 소리를 필두로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반전됩니다. 묘한 떨림을 가진 기타 소리를 배경으로 Eric Burdon은 Don't Let Be Misunderstood 스타일의 멋진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중반부의 격렬한 기타 연주와 숨가쁜 업템포의 전개는 (그만큼 세련된 것은 아니지만) Beatles의 Yer Blues와 비슷해 보입니다. 파워있고 깊은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울림에 Yardbirds류의 백보컬도 듣기 좋습니다.
분명 Blues 템포이건만이 이 곡을 따라 춤을 춘다는 것은 Yer Blues에 맞춰 춤추는 것처럼 쉽사리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만큼 고통스러운 것이겠지요. St. James Infirmary가 제목처럼 치료소라면 그것은 분명 프라이멀 스크림을 시술할 것 같습니다. 
많은 밴드와 가수들이 즐겨 부른 곡인데 Bobby Blue Bland의 옛스런 스타일도 나름대로의 멋이 있습니다.

New York 1963-America 1968
청승맞게 시작하는 지루한 싸이키델릭 블루스입니다. 단조로운 드럼 연주에 묵직한 기타 연주, 더 마음을 무겁게 하는 Eric Burdon의 목소리입니다. Bell Bottom Blues. Eric Clapton의 노래가 있지만 이 곡의 전반부는 그야말로 가슴을 울리는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할 목소리들과 어울리며 비장감은 점점 더해가고 한참의 휴지기를 넘어 절정에 이르면 격렬한 싸이키델릭 사운드를 펼쳐 보입니다. 19분에 달하는 긴 노래... The Immigrant Lad, St. James Infirmary와 함께 즐겨 듣던 트랙입니다.

전에도 몇번 쓴 적이 있지만 Eric Burdon의 목소리는 Mick Jagger와 Jim Morrison을 딱 절반씩 섞어놓은 듯합니다. 깊고 굵고,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그의 목소리는 늘 강한 울림으로 듣는 이를 침잠시키며, 특히나 염세적인 분위기의 노래들에서 대단히 위력적인 것입니다. 
조금은 다른 지향점을 가진 것이라고 해도 Hotel Hell에서 보았던 그의 마력이 이 앨범에서 또한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음만은 분명합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는 그대로일까
그 모랫벌에 장대처럼 우뚝
서있는 사람
그 사람의 핏기 없는 눈빛,
그 어둑한 자세 마저
변한 것은 없다
(jjlee)

목숨을 건 도하... Immigrant Lad가 끝나고 나면 건너고 싶은, 그리고 반드시 건너야 할 바다가 내 길목마다에 펼쳐져 있습니다.
 

1999.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