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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lan>은 Bob Dylan의 거의 평가받지 못한 앨범 가운데 하나이다. 유명 인터넷 쇼핑몰들에도 Tape만 있을 뿐이었고, 나 또한 낡디 낡은 빽판으로 갖고 있는 앨범이다. 대분의 노래가 민요이거나 남의 작품이며 자신이 직접 쓴 곡은 Sarah Jane 뿐이다.
하지만 Dylan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몇몇 노래들이 이 앨범 속에 있어서일까. Dylan의 어떤 앨범보다도 좋아하는 앨범이기도 하며, 그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앨범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노래에 짙은 허무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 허무감이 따뜻함을 그립게도 만들기도 한다.
그에 관한 기존의 리뷰들과는 상관없이 Dylan을 좋아한다면 놓칠 수 없는 <Dylan>, 12월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모처럼 따스하게 울려퍼지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허망하고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Lily of the West
장미빛 뺨과 루비같은 입술을 지닌 Flora와의 만남에서 비롯된 주인공의 종말을 그린 슬프고 낭만적인 구전가요다. 
기타, 베이스, 하모니카의 단순한 연주에 하프시코드처럼 들리는 장식적인 오르간 멜로디가 귀를 즐겁게 한다.(이 소리가 너무 작게 들려 좀 안타깝다.) 어쩌면 이렇게 조화를 이루는 방법도 있는가 보다. 촌스런 여성 코러스도 이 노래의 옛스런 맛을 더하는 것 같다. 가사의 배경이나 주인공의 신분적 레벨을 볼 때 세련된 방식은 당연 어울리지도 않는 것이었겠지...
만약 이 노래가 깔끔한 연주와 정제된 사운드에 아름다운 화음으로 불리어졌다면 대학생들이 하얀 셔츠를 입고 "나는 뉴캐슬의 광부였네"라고 불러대는 포크 음악에 대해 John Lennon이 보인 시큰둥한 반응과 비슷한 알르레기를 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
Flora에 관한 세 노래. Peter Paul and Mary의 Flora가 가진 (남의 나라 이야기같은) 경쾌함, Pentangle의 The Lily of the West가 가진 사실적인 느낌에 비해 낭만적이면서도 아픔과 허무함을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 Bob Dylan 버전의 특성이다.

Can't Help Falling in Love
이 앨범에서 Dylan의 목소리는 다른 앨범들과 상당히 다르게 들린다. 듣는 이의 귀를 무시하는 오만함은 별로 없이 따스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Can't Help Falling in Love는 기타의 커팅 연주나 낭만적인 오르간 사운드에 감기 걸린 듯한 그의 목소리가 달콤한 노래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수많은 가수들이 불러온 이 흔한 노래, 그러나 누구든 Dylan만큼 멋지게 부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Take my hand, take my whole life too
for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Sarah Jane
아무리 감상적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Dylan은 Dylan. 특유의 주절주절 창법이 사라질리는 없다. 마치 Like a Rolling Stone같은 식인데 그만한 젊은 날의 패기는 없다. 그게 좀 아쉬운 점도 될테고, 나름대로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는 노래다. 하지만 아무래도 연주가 좀더 강했다면 더더욱 멋진 곡이었을 것이다.

The Ballad of Ira Hayes
초기 앨범에서 자주 나오던 낭송 형식이 다시 등장하는 곡이다. 미국적인 센티멘탈리즘이라고 해야 할까. 첫 느낌의 밋밋함에 비해 들을수록 맛이 나는 노래다. 편곡에 따라서는 정말 멋진 발라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Mr. Bojangles

보쟁글스라는 사내를 알고 있지
은빛 머리에 초라한 셔츠, 
헐렁한 바지에 닳아빠진 구두를 신고 
당신을 위해 춤을 추지...

십수년 전 어느 영화에서 주인공이 기타를 들고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영화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때 내가 가졌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그 영화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곡조를 듣는 것만으로도 주인공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비워내는 듯한 허전함, 그러나 그 허무감을 낭만으로 바꾸어놓는 힘이 있는 곡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 가운데 하나이다. He jumps so high라는 대목이 왜 그리 슬프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이 노래를 듣노라면 중학교 때 보았던 영화 <25시>도 생각난다. 엉뚱하니 순수 게르만족의 표본으로 발탁되어 이용만 당하다 만신창이가 된 안쏘니 퀸이 그의 아내와 재회하는 대목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한 기자가 사진을 찍기 위해 계속 "Smile!!!"하고 요구하면서 끝을 맺었고, 그 장면이 지금껏 잊혀지지 않는다. 
Mr. Bojangles의 춤도 꼭 그처럼 내게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Dance!!!"

Mary Ann
얌전한 옛 민요의 느낌이 많은, 딱히 이 곡조를 알지 못한다고 해도 어딘가 귀에 익은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곡이다. 촌스런 목소리의 여성 보컬이 Dylan의 촉촉하고도 껄쭉한 목소리와 매력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옛가요처럼 느껴도 아무런 잘못이 없는 노래 같다.

Big Yellow Taxi
어쩌면 싸이키델릭 음악에나 어울릴법한 동화적인 느낌의 제목. 이 앨범의 가라앉은 느낌 속에서는 상당히 경쾌한 곡이다. <Self Portrait> 같은 몇몇 앨범 이외에는 듣기 힘든 예쁘장한 코러스가 즐겁고 재미있다.
A Medicine for Melancholy ㅡ 이 앨범의 멜랑콜리한 느낌을 없애줄 법한 '즐거운 묘약'이다.

A Fool such as I
Elvis Dylan인지 Bob Presley인지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할법한 니글니글한 음치 목소리인데 이 곡의 낭만성을 배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한 노릇이다. Dylan의 이러한 고약한 목소리는 Lay Lady Lay에서 이미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 노래도 그만큼 사람을 잘 꼬득일 것 같다. 나같은 바보의 노래다.

Spanish Is the Loving Tongue
느린 곡조로 전개되다 재미있는 피아노 소리가 나오면서 아주 느긋하고 낙천적인 멜로디를 들려준다. <Desire> 앨범의 몇몇 곡에서 볼 수 있는  멕시코 풍의 곡조를 연상케 한다. 사랑의 고백이라면 어찌 Spanish만 그러하랴.
결국 이 앨범의 허무한 낭만주의는 결국 마지막 두 트랙에서와 같은 Happy Ending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점에 대해서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랬으면 좋겠고 그러한 의도가 숨어 있어 내게도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만 있다면 더욱 기쁘겠다.

Still I've always kind of missed her
Since that last sad night I kissed her
Broke her heart, lost my own
Adios, Mi corazon...

적어도 나의 경우, 영화와 소설 그리고 음악 가운데 가장 빨리 잊혀지는 것은 영화였고, 그 다음이 소설이었다. 그러나 노래는 가사를 잊어버릴지언정 곡조는 잊혀지는 법이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어쩌면 정보량과 기억의 지속성이 가지는 반비례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꼭 그렇게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을 꿈꾸는 것이 그곳에 도착한 것보다 낫다"는 <야누스>에서 읽은 스티븐슨의 언급은 나의 노래 듣기에도 어느 정도 유효한 것이다. 어쩌면 나는 노래를 듣는 시간보다 그 노래의 느낌, 곡조, 일체감 등에 관해 혼자 생각하고 느끼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더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Dylan 앨범은 내 마음에서 쉬지 않고 돌아가는 낡고 낡은 음반이다. 안티크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옛, 옛 소리의 나라, 망각의 나라에서 볼품없는 Mr. Bojangles는 오늘도 잊지 못할 춤을 추고 있다.

He said 'I dance now at ev'ry chance in honky tonks 
For drinks and tips
But most of the time I spend behind these county bars
Cause 'I drinks a bit
He shook his head, and as he shook his head 
I heard someone ask 
Please, Mr. Bojangles, Mr. Bojangles, Mr. Bojangles, 
Dance!
 

1999. 11. 21. jjlee(c).
 

PS. 
군대에 있는 사이 동생이 (나를 대신하여) 가끔 "먹통레코드"에 들러 빽판들을 사오곤 했다. Welcome to My Nightmare, Electric Ladyland, Trilogy, John Lennon Live in New York City, 그리고 Free Wheelin'이나 Dylan, Planet Waves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도 몇몇 영화, 음반을 동생을 통해 접하게 되었으니 여전히 빚만 쌓이는 것 같다. 사랑하는 동생 은영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