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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움직일 수 없는 물체와 만났을 때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했지.
ㅡ 낙원의 샘, 아써 클라크

Mann in Black

M.I.B. 
UFO의 존재에 관해 무엇인가 비밀을 캐는 사람들을 쫓는 검은 양복의 사나이들. 그러나 그런 미스터리한 분위기도 아니고 윌레니엄을 구가하는 윌 스미스의 코믹하고 황당한 이야기도 아니다.
어둠, 혼란, 자조, 절망, 정체성 상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가끔 Manfred Mann의 Chapter III 앨범을 들었다. Mr. You're a better Man than I나 Travelling Lady, Snakeskin  Garter, Time, Devil Woman 등을 듣는 것은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일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그 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었다.
도무지 편안하고 밝은 노래라곤 찾기 힘든 Mann in Black의 제 3장.
그 1절에도  몇몇 경쾌한 분위기의 곡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그 색채는 한없이 어두운 것이었다. 2절 역시 어두운 색채가 강하지만 전반적으로는 Vol.1 만큼 어두운 색깔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었건만 곡조와 상관없이 Mike Hug는 더욱 피폐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Mann in Black. 그들이 노래했듯 "One Way Glass"의 단절된 세상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래는 그 어둠 속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소리가 만들어내는 빛줄기이다.

Chapter III's Section (ii)
Mike Hugg : Vocal, Piano, Electric Piano / Manfred Mann : Organ
Steve York : Electric & Acoustic Bass
Bernie Living : Alto Sax / Craig Collinge : Drums

Lady Ace
8분에 이르는 긴 곡으로 특유의 느릿한 템포가 조금은 빨라진 것이 꽤 활력있다. Vol.1의 곡들과 비슷한 구조로 보컬-브라스 파트가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두 멜로디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곡을 이끌어간다. 나는 이런 현학적인 사운드에 대해선 그다지 취미가 없는 편인데 이 앨범의 브라스 연주는 대개가 현란하고도 난해하다. 이 앨범 대부분의 곡에서 이처럼 브라스 연주가 일반적인 록 음악에서의 리드 기타 파트를 대신하고 있다. (부클릿의 정보가 옳다면 이 앨범에는 일렉트릭 기타가 사용되지 않았다.)

I Ain't Laughing
Eric Burdon이 불렀다면 더욱 어울릴 곡이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곡이다. 그만큼 느낌이 어둡다는 의미로 들릴 수도 있겠는데 짐작하는 만큼 어두운 곡은 아니다. 하지만 어쿠스틱 기타의 빠른 아르페지오와 Mike Hugg의 목소리만으로도 삭막한 느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브라스가 들어가지 않은 노래. 코러스 효과가 많이 느껴지는 기타 소리가 신물을 삼키는 듯 쓰리게 들린다.

Poor Sad Sue
Mick Rogers는 이런 노래들들 통해 중기 Manfred Mann Band의 사운드를 결정지은 것일까. Mick Rogers가 기타-보컬을 맡았던 시대의 Manfred Mann과 가장 유사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곡이다. 특히나 인트로 부분은 전형적인 Manfred Mann 특유의 헤비 록 사운드를 지향하고 있다. 일렉트릭 기타 없이도 이러한 묵직한 느낌이 만들어지는 것이 사뭇 신기한 일이다. Steve York의 멋진 베이스 연주도 힘있는 사운드에 일조하고 있으며, Mike Hugg의 간결한 피아노 연주도 이 곡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이 곡은 즉각적인 반응을 촉발시키는 리듬감과 이해를 요구하는 실험적인 사운드라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음악적 특성을 함께 갖고 있는 듯 후반부는 거의 불협화음에 가까운 실험적인 브라스 연주가 복잡하게 뒤얽혀 혼란스럽다. 마치 동물농장처럼 꽥꽥대는 관악기들이 방향잃은 가축들ㅡ날짐승의 묘한 걸음걸이 같다.

Jump before You Think
빠른 퍼커션 연주를 배경으로 Steve York의 베이스가 강력한 일렉트릭 기타처럼 전반부를 장악하고 있다. Manfred Mann의 오르간 연주를 필두로 예의 브라스 사운드가 곡을 어지럽고 혼란스런 느낌으로 이끌어 가는 연주곡이다.

It's Good to Be Alive
Mike Hugg. 
Manfred Mann과 비슷한 마스크를 지닌 이 사람은 무엇이 전공인지 모르겠다. 초기 팝-블루스 그룹으로서의 Manfred Mann Band에서는 드럼을 연주했는데, Chapter III에선 피아노와 보컬을 맡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사람의 전공은 작곡과 보컬이 맞는 것 같다. 말기 폐결핵 환자(육체적)나 극심한 자폐증 환자(심리적)의 노래 같은 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가히 천재적이다.
죽지 못해 산다는 소리일까. 살자는 노래 치고는 다 죽어가는 곡조다. 앨범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실험적인 재즈 사운드가 이 곡에선 거의 보이지 않는다. 브라스 파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합당한 보조적인 반주를 이루며 곡의 주도권은 틀림없이 보컬에 있다. Mike Hugg의 목소리가 특히나 매력적으로 들리는 곡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트랙이다.
꼭 상여소리를 서양식으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는데... 이렇게 살아도 살아 있음을 좋고 의미있는 것일까. 나는 이런 노래들을 들으며 감정과 상상의 접점을 찾지만 원한다면 언제든 그 끈을 놓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Happy Being Me
거의 16분에 가까운 긴 곡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밝은 분위기에 가장 팝적인 경쾌함을 지니고 있다. 마치 Vol.1의 Ain't It Sad처럼.
후반부의 Organ 연주는 마치 보컬 화음처럼 들리면서 묘한 비애감을 느끼게 한다.

Virginia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주는, 그들이 즐겨하였듯 Dylan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곡이다. Chapter III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중압감, 절망, 고통스런 이미지와는 달리 가벼운 곡조 속에 슬픔이 깃들어 이쓴ㄴ 것 같다. 하지만 중반부에 돌출하는 불협화음에 가까운 브라스 사운드는 비명을 질러대며 감정적인 파탄을 보여주고 Manfred Mann의 오르간은 잔잔하게 시작해서 점점 강렬한 사운드로 변모해가다 가녀린 피아노 멜로디로 바뀌어 끝을 맺는다. 
이 노래를 듣는 어느 순간 마음이 흔들림을 느꼈다. 경쾌한 곡조 어딘가에 숨어 있는 쓰린 맛을 보았던 것일까. 마지막 부분의 잔잔한 피아노 연주를 듣노라면 이 곡의 본질은 또 얼마나 여리고 순수한 것인지...

for Happy Being Me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ㅡ 봄, 오규원

Vol.1이 주는 느리면서도 강력한 느낌을 지닌 염세적인 분위기가 워낙이 강렬했던 탓일까. 그만큼의 비장미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욱 피폐하고 더욱 고통스러운 느낌을 주는 리듬 속에서 나는 나름대로 빛줄기를 바라보고 싶었다.
Mann in Black.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 끝없는 삭막함. 무엇인가 소진되어버린 느낌... 펼칠 때마다 괴로움을 펼쳐보이는 힘겨운 Chapter III다.
그러나 나 자신이, 지금, 그러하지는 않았으면 싶다. 나는 맹목적이며 그래도 나는 희망적이다. 지옥이라고 필 꽃이 안 핀다던가.
 

1999. 12. 12. jjle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