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라디오의 꽃분홍빛 사연쯤이야 어디엔들 없으랴. 술취한 탱고로 가는 야속한 심정, 어느 길엔들 비틀대지 않으랴. 밤안개속의 데이트, 그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제목을 가진 노래가  잡음 섞인 별이 빛나는 밤을 채우던 시절이 있었지. La Playa, 한번쯤 나도 그런 안개 속을 걸었고 비슷한 기타 소리가 내 마음 속을 흐르고 있었지. 차가운 대기는 마주잡은 손을 더욱 붙들게 하고 끈적이는 감촉이 각별한 온기를 내게 전해주었지. 때로 안개에 젖어 속옷이 비치고 가로등 아래로 긴긴 속삭임이 흘러갔으나 밤안개 속이었으니 그 사연 그 누가 다 알 수 있으랴. 마냥 낭만적인 것도 아니었고 사연은 늘 제목보다 시시한 법, 뒤따르는 외로운 걸음이 불어대는 그렇고 그런 곡조인 것이야. 하지만 휘파람의 주인공은 알지 못하지. La Playa, 하얀 안개에 분홍빛으로 변색된 핏빛 사연을. 그 안개 속을 하염없이 걷던 길고 잊지 못할 하루를.
 

2000. 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