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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Dylan의 라이브를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여기 저기서 매우 단편적으로 몇번 본 적은 있습니다만 기대가 컸지요. 젊은 날의 밥 딜런을 본다는 데 대하여.
이 비디오는 딜런의 영국공연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것이었는데, 실망스럽게도 콘서트 위주의 화면이 아니었고, 주로 무대 뒤의 모습들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이것 저것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이 있었지요.
화면은 전부 흑백이었고, Don't Look Back 타이틀에 이어 스텝과 출연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죽 나왔는데 거기에 도노반이 있었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딜런과 도노반의 만남에 대한 흥미로운 기대감으로 화면에 집중하였습니다.(비디오 중간 중간에 도노반의 공연 포스터를 클로즈업 시켜 보여줬습니다.)

65년이면 제가 태어난 해인데, 그 무렵의 그는 매우 젊어 보였습니다. 헤어 스타일은 그 특유의 부시시한 모습이었지만 얼굴은 너무 희고 갸날프게 보였습니다.
어쨌거나 그는 자유분방한 지성인이나 미술학도처럼 보였고, 예쁘장한 면도 있었습니다. 상당히 매력적인 얼굴이었지요. 그래서인지 이 비디오 속에서 조안 바에즈는 그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말씀대로 콘서트 위주의 것은 아니었기에 그의 공연 준비 과정이나, 작곡하는 모습, 대화와 토론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자신과 확신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존 레넌의 오만함 뒷면에는 어딘가 우유부단함과 열등감 같은게 숨어 있어 보입니다만, 그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견고해 보이는 그는 그야말로 'Like a Rolling Stone" 이었습니다.

앞부분의 한참 동안은 그 곁에 항상 조안 바에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차를 타고 갈 때마다 뭔가 먹더군요. 사과도 먹고, 바나나도 먹고, 무척 식성이 좋아보였지요. 거의 카메라를 의식하지도 않고 천연스럽게. 그녀는 식성 보여줄려고 나왔나 의구심을 갖던 차에 인상깊은 장면들이 나왔습니다.
자신들이 여장을 푼 호텔방 같았습니다. 딜런은 타이프라이터 앞에 앉아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공연때를 제외하곤 거의 내내 담배를 물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무슨 노랫말을 짓고 있거나 편지를 쓰는 것 같았는데, 그 동안에 조안 바에즈가 기타를 잡고 노랠 불렀습니다. 조안 바에즈의 노래는 민요풍의 처음 듣는 것이었는데, 분위기를 정말 잘 잡아나갔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매우 어두워 보였고, 마치 '과거가 많은 여인'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말 진지하게 노래했고, 인상깊은 것이었습니다.
딜런은 머릴 끄덕이며 계속 타이프를...
그러다 딜런이 기타를 잡더니 노랠 한곡 했습니다. 역시 처음 듣는 노래였습니다만 예의 그 오만방자한 음치 같은 목소리로 멋지게 불렀습니다.
조안 바에즈가 화음을 넣으주려 애썼습니다만 잘 되질 않았고 이제 막 만든 노래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중간쯤엔 정말 음치처럼 아무렇게나 불러대니 바에즈가 그냥 웃고 말더군요. 물론 딜런은 기탄없이 노랠 계속 불렀지요.

여기 저기 공연하는 모습들을 잠깐씩 보여줬는데 비틀즈의 공연 분위기와는 정말 180도로 달랐습니다. 공연장은 아주 조용하였고, 오직 포크기타와 하모니카와 딜런의 목소리 뿐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진지하게 노래하였습니다.
공연장으로 가는 어느 차안에서 딜런이 신문을 보는데 거기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 Dylan Digs Donovan!

비디오를 거의 반쯤 봤는데도 도무지 도노반은 보이질 않더군요. 지금껏 나온 걸 놓쳤나 했는데 드디어 잠깐 도노반이 보였습니다. 토끼 이빨.
하지만 그 호텔방에선 심한 말다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전 귀머거리라 '소리' 밖엔 들리지 않았습니다만 언성이 꽤 높아졌습니다. 딜런과 어떤 남자가 쌍소리를 섞어가며 말다툼을 벌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도 지질 않고 계속 언성을 높이다 겨우 끝이 났습니다. 분위기가 상당히 어수선해보였는데 도노반은 창가에 앉아 기타를 잡고 분위기가 정리되길 노심초사 기다리는 것 같았지요.
그때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는데...
아마 그때 도노반의 나이는 스물 정도였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그 무렵의 그는 '왕자'가 아니었습니다. 방금 시골에서 올라온 촌스럽고 철없는 소년 같았고, 딜런 앞에서 노랠 한다는데 대하여 매우 긴장되어 보였습니다. 또다시 연민의 정이.......

하지만 막상 노래를 시작하니 기탄없이 잘 불렀습니다. 역시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딜란의 것인지 도노반의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가 아닌 거의 딜런과 비슷한 목소리로 노래하였습니다. 조금 단순하지만 좋은 곡이었습니다.
흐뭇하게 그를 바라보는 늙은 아저씨도 있었고, 딜런도 기분좋게 노랠 듣고 있었지요. 도노반은 조금 경직되어 보였습니다만 무사히 잘 불렀고 일동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딜런 스타일로 잘 부르긴 했지만 딜런 같은 패기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도노반의 노래가 끝나자 딜런이 다가가더니 기타를 빼앗아(?) 잡았습니다. 그러더니 당장 It's All Over Now Baby Blue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곡에 관해선 전에도 썼지만 대단한 오만함으로 음치처럼 마음대로 불러대는 노래지요. 하지만 정말 매력적인 곡인 것도 틀림없습니다. 어쨌거나 딜런은 도노반에게 '이런게 바로 나의 음악이야. 이게 바로 진짜 포크 음악이지."하고 말하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여유만만하게 그 노랠 불러나갔습니다. 
그 모습은 좀 얄밉게도 보였습니다만 어쨌거나 그는 자신의 매력을 한껏 뿜어내는 것 같았습니다. 딜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딜런의 노래가 끝나자 도노반은 좀 얼이 빠진 듯한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추스리려 애쓰는 것 같았습니다. 좀 기가 죽은듯 일동 박수에서조차 그만 빠져 있었습니다. 또 연민의 정이......

말다툼을 할 때도 그랬고 몇몇 다른 화면에서도 그렇게 보였습니다만 딜런은 상당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알아듣지도 못한 영어입니다만) 사람들이 말할 기회도 빼앗아가면서 연신 지껄여 기를 죽여놓더군요. 좀 독선적으로도 보였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처럼도 보였습니다만 한편으론 확신으로 가득찬 인물처럼 생각되었습니다.(말하는 목소리는 노래와는 달리 좀 경망스러웠습니다.) 그러한 카리스마가 그를 더욱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나 봅니다.

콘서트에서의 딜런은 그야말로 진지함 그자체였습니다. 마지막 콘서트 화면은 A Day in the Life에도 나오는 로얄 앨버트 홀에서의 것이었습니다. 마구 아무렇게나 불러대는 것 같은 그의 노래였지만 그는 매우 진지하고 신중했습니다. 하모니카를 불 때도 결코 대충대충 넘어가지는 않았고, 표정은 심각했습니다.
그는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도 불렀고, 마지막엔 My Back Page가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노래들이지요. 
제가 갖고 있는 Doors나 Pink Floyd의 비디오처럼 콘서트 위주가 아니라서 아쉬웠습니다만 딜런의 60년대, 또는 포크 음악의 60년대를 돌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다큐멘타리였습니다. 그는 Don't Look Bck이라고 했습니다만, 자꾸만 뒤돌아보게 됩니다.
 

1998. 12. 4. JJ.Le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