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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Floyd가 아니라 해도 폼페이는 언제나 저를 매혹시킨 장소였습니다. 79년 폭발한 베수비오 화산은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죽음의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재앙이 바로 영원으로 가는 길인양 그 정지된 시간 속에 폼페이는 다시 발굴되었습니다.
죽음으로 뒤덮인 그 매혹의 장소에서 pink floyd는 관중도 없이 매우 독특한 라이브 기록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아름다운 건물들과 소돔을 연상시키는 음란한 그림들, 그리고 우아한 공중목욕탕과 다정한 부부의 빵가게를 지나 Pink Floyd가 기다리는 폼페이의 원형경기장으로 가겠습니다.

Syd Barret이 빠져버린 Pink Floyd는 잠깐 공황상태로 흔들렸습니다만, 머지 않아 Roger Waters와 David Gilmour가 적절히 그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그리고 Rick Wright 역시 작곡과 보컬에 참가하고, Nick Mason 마저 가끔씩 작품을 선보이며 그들은 나름대로 절묘한 균형을 맞춰 나갔지요.(그 균형은 <Animals> 앨범이 나올 때까지 유지됩니다. 그 이후는 Roger Waters 독재국가가 되었습니다만...)
Pink Floyd의 Pompei Live는 <Meddle> 앨범 발매 이후 이러한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결산하는 자신들만의 콘서트 같은 것이었습니다.
Pink Floyd는 라이브 콘서트에 있어서 대단한 조명과 음향장치, 독특한 무대와 시각효과 등으로 늘 대단한 화제를 만들어 왔습니다.
Pompei Live의 경우엔 그와는 반대로 폼페이의 유적들을 배경장치로 사용할 뿐 소위 '무관중 Live'로서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그들만의 콘서트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폼페이의 원형경기장 가운데 앰프를 갖다놓고 연주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관중이라면 촬영 스텝과 장비 스텝 몇명이 전부였지요.
원형경기장의 중앙엔 드럼이 있고, 왼편엔 기타, 오른편엔 베이스와 키보드가 배치되었으며, 드럼 뒤로는 거대한 Chinese Gong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필름이 언제 제작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71년에 발표된 <Meddle> 앨범의 곡들을 주로 연주하고, 간간히 <Dark Side of the Moon>이 깔리는 것으로 보아 73, 4년 무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까지나 '비디오'니까 그들의 얼굴 생김새에 대해 잠시 언급해 보겠습니다. 데이빗 길모어는 어찌 보면 못됐게도 생겼지만, 어쨌거나 미남형의 차갑고도 날카로운 얼굴이었습니다. 진지하고 차분한 사람 같은데 이마는 돌고래입니다. 
반면에 로저 워터스는 정말 못생겼습니다. 그가 인상쓰면 그야말로 영락없는 프랑켄쉬타인이지요. 입도 크고, 코도 크고, 턱도 길고, 그런데도 눈은 마치 여자의 것처럼 예쁘게 반짝였습니다.
릭 라이트는 섬세하고 예쁘장한 얼굴이었는데 어딘가 희미하게 '배신자'의 야비한 구석이 있어 보였지요. 하지만 Echoes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정말 멋집니다. 덥수룩한 수염에 반짝이는 눈, 찌푸린 미간...... 좀 과장해서 말하면 철학적인 탐색자의 영상이었습니다.
닉 메이슨은 (그에게는 미안한 일입니다만) 해적 똘만이 같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열심입니다. 술 잘먹게 생겼지요.

연주의 시작은 매우 정적입니다. 아주 멀리서 폼페이의 원형경기장을 화면에 잡았고, <Meddle> 앨범의 Echoes Part 1이 천천히 시작되었습니다. 마치 잠수함에서 들리는 물방울 소리 또는 레이더 탐지 소리 같은 음들이 이어지면서 약간은 동양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그 긴 전주처럼 아주 천천히 원형경기장의 중심을 향해 화면은 클로즈업 되는 방식이지요. 약간은 지루하고, 약간은 긴장된 전주가 끝이 나고 드럼 소리가 울려퍼지면 곧장 Rick Wright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그는 인상적인 모습으로 키보드를 연주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지요. David Gilmour는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멋진 화음을 들려 줍니다. 두 사람의 얼굴과 화음, 그리고 폼페이에서 발굴된 부조 작품들이 오버랩되면서 화면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것 같습니다. 릭 라이트의 목소리에 아주 잘 어울리는 곡이지요. 가끔씩은 폼페이의 황량한 언덕들을 지나가는 그들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데이빗 길모어는 무거운 분위기의 기타를 연주하는데 윗옷은 아예 벗은 채 에릭 클랩턴이 즐겨 사용하던 것과 같은 기타를 연주합니다.(릭 라이트도 벗었습니다.) 
중반부쯤에서 베이스 연주가 부각되면 bass를 퉁기는 Roger Waters의 모습이 잠깐씩 나오는데, (전 그 얼굴을 좋아합니다만) 거의 괴물입니다. 대단히 개성적인(?) 얼굴이지요. 그는 좀 오버액션을 하면서 연주에 몰입해 있었습니다. 이 곡에선 전혀 보컬에 참가하지 않으니 더욱 그런가 봅니다.
사실 <Meddle> 앨범에 수록된 Echoes는 사운드가 좀 빈약하여(Norman Smith를 배제시키고 자신들이 직접 제작했습니다) 불만이었는데, 이 Live에선 아주 박진감이 넘칩니다. 처음의 잔잔한 분위기를 생각할 때 대단히 위력적인 것이었습니다.

Echoes Part 1이 끝나고 나니 식사 장면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다른 곳에서 찍은 내용 같았는데, 데이빗 길모어가 매우 멋지게 잡혔습니다. 여기선 그가 브레드 피트처럼 보였습니다. 로저 워터스는 건반에 머리를 처박고 Dark Side of the Moon에 수록된 듯한 스타일의 실험적인 음악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교한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해골이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 되었습니다. 그리고 Careful with the Axe, Eugine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화면 가득히 노래 제목이 나오는데, 글자 순서대로 나오질 않고, 키포인트라고 할 Axe가 먼저 나오는게 재미있습니다.
로저 워터스는 이 곡에서 입으로 다양한 효과음들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알아듣지 못할 이상한 소리들을 중얼거립니다. 펄펄끓는 노상온천이 나오고, 화면 가득히 안개같은 증기가 가득하면서 음악도 조금씩 끓어오르기 시작하지요.
Pink Floyd 특유의 스타일을 가진 좀 밋밋한 연주곡이지만 절정부에서 로저 워터스는 엄청난 비명을 질러냅니다. 마치 유진이 도끼에 발등이라도 찍힌 듯이 고함을 질러대는데, 그가 절규를 시작하는 순간 원형경기장엔 수많은 조명이 들어오고, 화산 폭발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매우 역동적인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마치 폼페이 화산의 열기에 로저 워터스의 얼굴이 불타버리는 듯한 화면처리가 인상적입니다.(이 오랜 문화재가 그들의 고출력 사운드로 인해 손상되지 않았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워터스의 절규를 고비로 음악은 잦아들면서 평온을 되찾고 끝을 맺지요.

곧이어 공포에 질린 듯한 인물의 벽화가 등장하면 베이스 연주가 흘러나오면서 A Saucerful of Secrets가 시작됩니다. 이 곡이 시작되면 화면은 비디오 아트를 연상시키는 수직으로 움직이는 선들만을 한동안 보여줍니다. 어떤 '파'가 끊임없이 수직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연주로 돌입하면 릭 라이트는 손바닥과 팔로 피아노를 여기저기 마구 두드립니다. 길모어는 여유롭게 앉아 썬글래스를 끼고 껌을 씹으면서 기타를 아무렇게나 긁어댑니다. 그는 맨발이었습니다. 
워터스는 두개의 심벌을 앞에 두고 신나게 두드려댑니다. 심벌이 부서지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메이슨 뒤쪽의 거대한 중국징으로 달려가 엄청난 힘으로 징을 두드려댑니다. 그는 상당히 키가 큰 편인데 받침대를 포함한 징도 그만합니다. 그는 거의 징이 쓰러질 정도로 연신 두들겨댑니다. 매우 원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 노래는 마치 '스트레스를 위한 불협화음'이라는 제목이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서서히 주위는 어두워져 가다 이윽고 밤이 왔습니다. 길모어가 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스캣 스타일의 멋진 보컬을 들려줍니다. 워터스는 여전히 오버 액션으로 베이스를 두둥실......

다시 으스름 무렵의 장면입니다.
One of These Days I'm Going to Cut You into Little Pieces란 끔찍한 제목이 나옵니다. <Meddle> 앨범엔 그냥 One of These Days라고만 되어 있을 뿐이지요. 이 곡은 드럼 위주의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닉 메이슨은 신들린듯 드러밍에 빠져 있습니다. 
드럼 소리는 고대의 북소리처럼 들리고 그의 동작들은 어딘가 사물놀이패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어 보입니다. 중반쯤에 가면 클라이브 바커가 만든 헬레이저의 핀 헤드 같은 낮고 끔찍한 목소리가 One of These Days I'm Going to Cut You into Little Pieces라고 겁을 줍니다. 연주가 계속되는 가운데 메이슨이 드럼 스틱을 놓치는 실수를 해 아주 잠깐 드러밍이 중단되는 사태가 있었습니다만, 무던히 잘 넘어갔습니다. 이 곡은 Time, Wish You Were Here와 함께 라디오 시그널 음악으로 많이 애용되기도 했지요. 이어지는 스튜디오에서의 일부 장면들은 비틀즈의 영화 Let It Be를 연상시켰습니다.

제가 보기에 Echoes Part 1과 함께 Pompei Live에서 가장 멋진 장면은 Set the Control for the Heart of the Sun을 부르는 대목이었습니다. 주변은 어둡고 희미한 조명아래 잔잔한 징소리와 함께 노래는 시작됩니다. 
로저 워터스는 매우 매력적이고 분위기 있는 느린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합니다. 그동안 화면엔 신화적인 벽화와 풍만한 선으로 이루어진 폼페이의 아름다운 그림들이 지나갑니다.
이 곡에서 보여주는 그림들은 20세기 초에 비로소 발견된 대저택 <신비의 별장>을 장식한 프레스코화들입니다. 제가 핑크 플로이드가 아닌 폼페이에 미쳐서 조사한 결과입니다.
화면에 나오는 그림들은 대부분 '세멜레'의 신격화가 이루어지는 주요 과정들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 가운데서 반라의 여인이 잘 차려입의 여인의 무릎에 얼굴을 기댄채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벽화는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고뇌하는 인간의 표정이 매우 절실한 느낌을 주는데, 이 필름 속에서도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상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그림들은 노래의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고대의 제사의식을 연상시킵니다.
음악이 중반부의 키보드 연주로 들어오면 릭 라이트의 연주 장면을 실루엣으로 처리한 채 뒷면으로는 폼페이에서 발굴된 시신들을 계속 보여줍니다.  화산재에 덮힌채 응고되어버린 그 시신들은 조각상과 같은 모습입니다.
저는 레코드로 발매된 이 노래의 두 버전을 알고 있는데, 둘다 그리 썩 마음에 들진 않았습니다만 Pompei Live에선 좀더 느린 템포와 그 분위기 때문이지 정말 좋았습니다. 마치 고대의 주술을 되살리는 분위기입니다. 화산재 속에 파묻힌 폼페이의 망령들을 불러내는 것도 같고, 시드 배릿의 광기를 추억하는 것도 같습니다.

Mademoiselle Nobs는 날씬한 개 한마리가 리드보컬을 맡아 자유분방한 스캣송(?)을 들려줍니다. 다른 노래들의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주는 듯한 휴식시간입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분위기를 잡는 것 같습니다. 
데이빗 길모어는 블루지한 하모니커를 연주하며, 로저 워터스가 기타를 칩니다. 릭 라이트는 개를 쓰다듬으며 계속 격려하고 Nobs는 의미를 잘 이해했는지 제법 분위기를 잘 맞춰가지요.
<Meddle> 앨범엔 이 곡의 이름이 Semus로 나오는데 노래 제목이란 의미 보다는 개의 이름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은 역시 Echoes로 장식됩니다. Part 2입니다. 
노상에서 끓어오르는 용암도 보이고, 화산재와 물이 뒤섞인채 끓어대는 언덕을 보여줍니다. 폐허 위의 아름다운 기둥들이 황량한 분위기를 장식합니다. 릭 라이트는 여전히 멋진 모습으로 노래를 들려주며, 데이빗 길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작과는 정 반대로 화면은 점점 멀어지고 결국은 처음처럼 아득한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저 자신이 폼페이에 매혹되어 있는 탓인지 Pink Floyd의 음악과 함께 하는 폼페이 구경은 관중이 없음으로 생기는 밋밋한 느낌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90칸이나 된다는 대저택 <신비의 별장>의 아름답고 인상적인 프레스코화들은 제 마음속에서 Pink Floyd의 음악과 결합되어 영영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노래처럼 아주 먼 꿈의 메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