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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일까요. 내가 속한 것들, 내 안에 속한 것들, 내가 살아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모든 것들 말입니다. 
기뻐하는 것은 무엇이고 나를 슬프게 하고 괴롭히고 눈물나게 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겨울 창가로 쏟아지는 햇살 받으며 내가 바라보는 것은 무엇이며, 내 마음을 뚫고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태양계의 세번째 행성 지구, 초속 30만km의 속도로 10만년을 달려야 가로지를 수 있는 반경을 지닌 은하에는 천억의 항성이 밀집한 채 긴 세월을 두고 한몸인양 거대한 회전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빛의 덩어리 같은 그 "밀집"이란 것은 또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요. 별과 별 사이는 얼마나 떨어져 있으며, 그 속에 얼마나 많은 공허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지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지러움을 더해 갑니다. 우리에게서 가장 가까운 항성계인 프록시마 - 알파 켄타우리조차도 4광년은 넘는 거리라고 합니다. 
천억의 은하가 제각각 서로 멀어져 가는, 불가지의 형태를 지닌 우주, 어릴 적 봄날 비닐하우스 속에서 느낀 따사로운 햇살처럼 간절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수많은 기억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존재하며, 어떻게 사라졌고, 어떻게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일까요. 이 온갖 생각들이 어찌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또 어찌 나 혼자 이 세계로부터 동떨어져 있다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인생무상이란 그 흔한 말이 데자 뷔의 순간처럼 현기증을 일으키는 시간입니다. La Serenissima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멜로디는  그런 느낌들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곤 합니다. 특히나 중반부의 기타 멜로디는 그 아련하고 어지러운 순간을 간결하고도 부드럽게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포레의 시실리엔에서 듣는 하프 소리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각성... 세상 만사가 춘몽중이라 했던가요. 모두가 꿈결같이 지나가는 듯한 나른한 느낌입니다. 내가 몹시도 좋아하는 무엇... 그 끝에 가면 나를 각성케 할 무엇이 있을 것만 같은 추락의 느낌입니다. 나의 태양신경총에 가해진 불의의 일격, 그것이 때로 행복을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2000. 11. 25. 새벽, for 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