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6년 프랑스 사교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생 제르맹은 연금술, 피혁염색, 불로장생 등 다방면에서 놀라운 기적을 보이며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는 여러 왕실의 지원을 받으며 수상쩍은 행보를 이어갔고, 오늘날에도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Shape of My Heart을 배경으로 비장 우유를 마시던 레옹. 그처럼 새카만 썬글라스를 낀 얼굴 밖에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Leon Redbone입니다. 
총과 다이나마이트 대신 중절모에 기타를 든 이 미심쩍은 인물은 그 얼굴부터가 영락없는 사기꾼을 연상케 합니다. 노래 듣고 얼굴 보면 많은 분들이 대실망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몹시도 수상쩍은 얼굴입니다.
그럼에도 JJ. Cale 이래 내가 가장 짧은 시간에 온갖 노래를 찾게 만든 Leon Redbone입니다. Cale의 "Laidback Style"을 연상케 하는 점도 있지만 Redbone은 보다 재즈적인 사운드에 보다 더 낙천적이고 장난스런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어느 시간, 어디에서 들어도 잘 어울릴 것 같고, 특히나 영화라면 멋진 배경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껏 들은 그의 음악과 얼굴, 그리고 수상쩍은 행적을 통해 이 "사이비 레옹"에 관해 간략하게 정의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흰 양복에 중절모를 좋아하는 사기꾼 같은 용모에 
    낙천적인 놈팽이 기질이 몸에 배인 자.
2. 우아한 척 볼쇼이 발레를 감상하더라도 뱀쇼, 불쇼, 차력이
    더 어울릴 듯한 사이비 교주 스타일.
3. 과장된 저음과 게으른 기타 연주가 인생을 낙천적인 것으로 
    만든다 주장하는 궤변가.
4. 11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투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신상명세 내놓기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미심쩍은 자.

이름조차도 가짜인 듯한 인상을 풍기는 이 철저한 "Secret Agent Man"은 자신의 사기성을 한결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사적인 정보를 전혀 공개한 바 없어 알려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재즈-블루스 프로듀서로 이름 높은 존 해먼드와 작업할 때도 자신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니 더 캘 의욕이 생기질 않는 것이지요. 그러니 클라투나 케일의 비밀주의는 레드본에 비할 바가 못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국적조차도 애매모호해서 한때는 캐나다 사람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작자가 어렵사리 알아낸 바에 의할 것 같으면 그는 1929년 뉴욕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의 데뷔 앨범이 1975년에 발매되었으니 그 동안에 그 무슨 사기행각을 벌였는지에 관해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재즈-블루스 씬의 얼치기 레옹이거나 돌팔이 쌩제르맹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물론 그들 같은 낭만주의자거나 사기성 강한 신비주의자는 아닐테지요.

Redbone 역시 Cale이나 Ry Cooder, 또는 Randy Newman과 비슷한 "crooner" 스타일을 죽어라 고집하는데 열창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입니다. 한우물 깊이 파서 평생 두레박 내리는 것 또한 Cale과 매우 흡사해 보입니다. 
1975년 <On the Track> 앨범으로 데뷔하여 라이브, 크리스마스 앨범을 포함하여 11장의 앨범을 발매한 그가 정말 1929년생이라면 45세에 데뷔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동안 어딘가에서 우물 하나 파고 있었을텐데 그가 어떤 식으로 그것을 실행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겠지요.
화면과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읊어대는 듯한 변사 내지는 변사또(이게 더 정확해 보입니다) 같은 느낌을 주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Redbone. 그의 음악은 한바탕 촌극 같지만 그것이 촌극이라면 몹시도 간결하고 세련된 촌극일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미심쩍은 음악은 그것이 위약효과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도 내게 있어 "Cloudy Day"를 위한 묘약이 될 것입니다. 
I want to be seduced!!

"이 기괴한 인물은 사기꾼, 엉터리의 원조적 존재로 본인의 나이가 300세이며 만병통치약의 제조법에 통달했으며 삼라만상은 자기의 손 안에 있다는 따위, 또 다이아몬드를 용해할 수 있다는 등 식은죽 먹기로 떠벌인다. 다만 그의 허풍, 뻔뻔스러운 거짓말, 여러 가지 이상한 버릇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위험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는다."

동시대를 살았던 카사노바는 생 제르맹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이것은 제한적인 의미에서 Redbone에게도 해당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기꾼이라면 참 유쾌하고 무해한 사기꾼 같은 Leon Redbone. 그가 뻔한 레파토리로 뱀쇼 불쇼 하며 엉터리 약을 판다고 한들 기꺼이 속고 싶은 그의 플레시보는 심신에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험담하고 있는줄 아는지 그는 느끼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노래하며 물러갑니다.
Please Don't Talk About Me When I'm Gone...

Leon Redbone Discography
1. On the Track
2. Double Time
3. Champagne Charlie
4. From Branch to Branch
5. Leon Redbone Live
6. Red to Blue
7. No Regrets
8. Christmas Island
9. Sugar
10. Up a Lazy River
11. Whistling in the Wind
 

2000. 11. 28. JJ.Le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