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rvor de Buenos Aires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 Joy.Rock.Club / 이작자 여인숙

Fervor de Buenos Aires
Vinicius de Moraes with Maria Creuza & Toquinho
<en La Fusa : Grabado en Buenos Aires>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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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들은
어느덧 내 영혼의 고갱이라네
분주함과 홤망함에 넌덜머리 나는
격정의 거리들이 아니라
나무와 석양으로 온화해진
아라발의 감미로운 거리...
//거리, 보르헤스

헤드폰으로라도 들었으면 싶었습니다. 어느날 문득 오래전에 처박아둔 헤드폰 생각이 나서 그걸 꺼내어 포터블 씨디 플레이어에 꽂았습니다. 내 귀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이어폰 ㅡ 세상 어떤 좋은 오디오나 헤드폰도 부럽지 않은 착각의 순간이 가끔은 있는 것이겠지요.
'Lamento no Morro'가 귓전을 울릴 때, 'A Felicidade'의 눈동자를 그릴 때, 'Samba em Preludio'가 한숨을 내쉴 때 기타와 콘트라베이스, 약간의 타악기와 드럼의 단출한 연주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하였으니 듣고 싶었던 것은 오직 하나 ㅡ 비니시우스의 목소리였습니다.
1970년 어느 날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라 푸사였습니다. 또낑요나 마리아 크레우자가 흠잡을 데 없는 음성으로 노래하고 있지만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가 없었다면 이토록 의미가 있었을까요. 흔히 말하듯 시인이자 외교관, 조빔의 작사가라는 이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지만 그의 면모는 참으로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01. Copa do Mundo
"La Fusa" 라이브의 간략하고도 활달한 오프닝입니다. copa가 컵이니까 세계우승컵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1970년 브라질의 3회 연속 월드컵 우승(쥘리메 컵을 갖고 갔지요)을 축하하는 노래인가 봅니다. 축구 라이벌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브라질 축구를 자랑하는... 따라서 이 라이브는 1970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텔레비전에서 펠레에 관한 특집을 보다 생각했습니다.)

02. A Felicidade
마리아 크레우자의 청아한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묵직한 비니시우스의 목소리와 또낑요의 나른한 저음이 거의 싸이키델릭한 느낌을 줍니다. 조빔이나 나라 리오의 곡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라 푸사에서의 이들의 목소리를 이기기는 어려울 듯 싶어집니다. 하지만 단지 Tristeza에 관해서라면 오르페우 네그라의 OST는 좀 각별한 느낌이 있습니다. 슬픔은 끝이 없고 행복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연인의 눈동자 속에서만큼은 Felicidade가 보이는 것이겠지요.

03. Tomara(Ojala)
이 앨범에선 유일한 비니시우스/또낑요 콤비의 작품으로 마리아 크레우자의 맑은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것이 스튜디오 곡에 비해 더 절실한 느낌입니다. "원컨대... 혼자 행복하기 보다는..." 하는 가사가 남의 일 같지 않게 들립니다. 또마라, 오할라, 아이 위시, 원컨대...

04. Que Maravilha
이 곡은 "까롤리나 까롤 벨라"에서처럼 또낑요와 조르지 벤의 공동작품입니다. 그녀라는 이름의 은총에 관한 이야기인데... 비에 젖었거나 흐트러졌거나 경적 소리에 정신이 없거나 그녀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즐겁습니다.

05. Lamento no Morro
말할 것도 없이 이 앨범의 베스트 트랙 가운데 하나입니다. 탄식이라기보다는 나른함에 가까운 조빔의 곡(Wave, 1967)에 비해 라 푸사에서의 라이브는 박진감이 넘치면서도 몽롱한 느낌이 가득합니다. Deja Vu... 또낑요가 노래하는 부분을 듣고 있노라면 먼 과거의 희미한 기억같은 것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듯한 착각이 일곤 하였습니다.'Antonio de Moraes'보다 'Vinicius e Toquinho'가 더 멋진 순간... 거의 피아노처럼 들리는 퍼커션 연주까지가 각성을 재촉합니다. 호베르뚜 빠이바의 옛스런 목소리로도 꽤 매력이 있는 곡이었습니다.

06. Berimbau / Consolacao
한바탕 격한 까뽀에라라도 벌이면서 기운을 차리고 마음 푸는 것인지...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꽤 다이내믹한 곡조입니다. 특히나 이 트랙은 Berimbau와 Consolacao의 접속곡으로 기타와 보컬이 함께 가는 Consolacao에서의 저음이 아주 멋집니다. 비니시우스와 또낑요는 화음을 이루기보다는 합창과 독창을 즐겨 하는데 그 혼합된 음색이 아주 매력적이지요. consolacao는 영어의 consolation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07. Irene
아무것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는 작자(?)가 오직 '이리니' 생각만 합니다. 그저 이리니 생각하며 웃고 보고 싶어하는 마음뿐, 끝부분에서 장난스레 웅얼거리는 비니시우스의 목소리가 그런 느낌을 전해주는가 싶은데 매력적이기도 하고 좀 느끼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08. Canto de Ossanha
어쩐지 '안티 페미니즘'의 징후가 느껴진다고 하면 지나친 상상일지요. 능동과 수동, 고압적인 단호함과 나긋나긋한 교태인지 인트로 부분의 보컬에는 꽤 선정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이 곡에서 풍기는 교조적인 분위기는 '축복의 쌈바'에서 비니시우스가 '사라바'를 외칠 때와 닮은 것일까요. 좀 어둡게 끈적이는 욕망과 밝은 햇살 같은 경쾌함이 교차하는 듯한 곡조입니다. 더 심한(?) 몇몇 편곡들도 있지만 라 푸사에서의 연주만큼 강렬하지는 못한가 싶습니다.

09. Garota de Ipanema
느릿한 매력이 있는 원곡이나 조앙 질베르뚜의 나긋나긋한 목소리, 또는 얼싸 킷의 노골적인 탄식에 비해 무척 가볍고 경쾌한 느낌입니다. 이 곡을 너무 많이 노래한 탓인지 비니시우스와 또낑요는 가로따를 빨리 걷게 하는데 재미를 붙인 듯 장난스레 매우 빠른 템포이지요. 영문 가사도 나름대로 낭만적이지만 이 노래가 그토록 알려진 것은 비니시우스의 가사일(?) 덕도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10. Samba em Preludio
Sem Voce ㅡ Without You의 느낌은 세상 어디나 누구에게나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인가 싶었습니다. 약간의 슬픔이 필요하다 노래하더니 느리고 느린 쌈바여서 그런지 약간의 슬픔은 전혀 아니네요. 인트로의 심상찮은 분위기에서부터 그러하지만 누가 부른다 한들 이들을 따라잡지는 못할 만큼입니다. 상실의 슬픔이 넘쳐나는 노래입니다만 그럼에도 Samba em Preludio의 테마는 '열망'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Ninguem'의 돌아가고픈, 하염없는 열망이겠지요. Sem voce, meu amor, eu nao sou ninguem...

11. Catende
Tomara나 Que Maravilha와 비슷한 분위기의 가볍고 경쾌한 곡입니다. 이작자가 '안전운행속도'라고 부르는, 적당히 느리거나 정당히 빠르고 편안한 느낌이지요. 하지만 조금만 더 흥이 났다면 마구 달릴 것도 같은 노래입니다.

12. Valsa da Tunisia
잠시 쉬는 시간인 듯, 조금은 울적한 느낌을 주는 기타 연주곡입니다. 비니시우스가 작곡했다는 왈츠곡인데 어쩌면 좀 지리멸렬한 스텝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13. Eu Sei Que Vou te Amar
조빔과 비니시우스의 전형적인 발라드입니다. 마리아 크레우자의 목소리만으로는 조금 피곤할 법도 한 분위기인데, 비니시우스의 낭송과 합창이 지루한 진행을 만회시켜 줍니다. 차분한 심정으로 들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곡인 것 같습니다.

14. Minha Namorada
이작자의 방을 흐르던 오랜 곡조입니다. 한적한 분위기 속에 절절한 마음이 담기어 있는 듯 한참 뒤에 나오는 비니시우스의 목소리가 무척 평안스럽게 들립니다. Inutil Paisagem의 사연이 Minha Namorada에 있는 것이기에 이 노래는 자연스레 전망 좋은 방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리움이 마음을 모으게 하고 그리움에 마음이 흐트러지고 그리움이 산만한 창밖의 풍경, 이 노래에 귀 기울이고 있을 Minha Namorada는 분명 행복할테지요.

15. Si Todos Fossem Iguais a Voce
그냥 비니시우스의 솔로에 오케스트레이션이 들어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 노래입니다. Minha Namorada에서도 그러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느리고 낮은 곡조에서 더욱 잘 어울리는가 봅니다. 세상에 단 두 사람만 있어 새로운 세계를 꾸리는 어릴 적의 즐거운 상상 같은 것, 꿈꾸는 섬의 노래 같은 느낌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당신 같다면... 역시 'Antonio de Moraes'의 명곡이라 할만한 노래입니다. . Someone to light up my life, I know I will love you...

라이브도 아니고 스튜디오 앨범도 아닌 어정쩡한 이 앨범이 녹음된 곳, La Fusa가 커피하우스인지 나이트클럽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1970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결코 뜨겁지 않은 열기 ㅡ 그 차갑고도 푸른 빛이 나의 밤과 나의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잠만 자는 방의 창가에서 그리던 Minha Namorada의 꿈 같은 것, 비니시우스의 나즉한 목소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저녁을 넘어 이 밤에도 충만합니다. Fervor de Buenos Aires ㅡ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는 보르헤스의 첫번째 시집 제목입니다. 비니야 벨류, 싸라바!!!

향수어린 사랑이나 여유로운 오후에
어우러지는 이 정경이 연출된 공원
그곳의 검은 꽃들 사이로 내가 사라진들
불가해한 밤에는 아무도 저어하지 않으리...
//아드로게, 보르헤스

2002. 8-10. JJ.Le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