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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시작되었다. 마그나 카르타의 Winter Song이 딱 어울리는 시절에 Airport Song의 또 다른 버전을 듣게 되었다. Airport Song은 안개로 해서 뜨지 못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이야기인데도 노래는 꽤 편안하고도 다정하게 들린다.
이번에 들은 곡은 라이브 곡에 이어 세 번째 버전인 셈인데 <Evergreen>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것으로 아마 Chris Simpson이 아내와 듀엣으로 취입한 한 것인 듯 싶다. 새로 들은 이 노래가 딱히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지만 Airport Song을 즐겨 듣던 시절을 생각하며 안개 자욱한 공항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사연은 다르지만 그 기쁨과 슬픔은 같다던 문주란의 <공항 대합실>이나 "그리움 참을 길 없어 나는 걸었네" 하던 <공항의 이별>, <공항에 부는 바람>에도 비슷한 상반된 느낌이 있을지 모르겠다. 마냥 편안하고 평온하게만 보였던 옛 항공사 광고 속의 Welcome to My World나 Roy Harper의 몽롱한 Twelve Hours of Sunset에도.

하지만 왜 그런지 공항 내의 풍경들을 바라보노라면 가슴 한 구석이 저린 느낌이 든다. 경비가 서 있는 여객 출입구의 안쪽 풍경을 바라볼 때 특히나 그러하다. 막무가내로 통할 수는 없는 금단의 지역인 탓인지도 모르겠다.
테리 길리엄의 영화 <투웰브 멍키즈>에서 남자 주인공이 공항 로비에서 아스라히 쓰러지는 장면 생각도 난다. 그 영화가 시사해주는 데자 부(기시감)의 느낌처럼 가끔은 그것이 꼭 내게 일어났었던 일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가 긴 머리에 콧수염으로 변장한 채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영화관에 앉아 있던 대목 또한 서글프다 싶었다. 자신의 삶과는 그다지 상관도 없어 보이는 영화 속의 영화처럼 허망한 약속 같은 것 말이다.
어쩌면 앨런 파커의 <The Wall>에서 꼬마 핑크가 아버지를 찾아 헤매이던 플랫폼에서처럼 비러 린을 떠올리는 노래가 나올 법도 하고 또 어쩌면 느릿한 옛노래가 끊임없이 흐를 것도 같다. 다시 만날 것이라고 기약을 하며...

사람들은 비록 자신들이 우연적이고 덧없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어떤 방식이 됐든 불멸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작별인사라는 것을 고안해 냈던 것이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그리고 나는 어느 하루를 기억한다. 허름한 봉투에 든 서류들이 쏟아질까봐 바로 들라며 탑승객 출입구를 향해 싸인을 보내던 오래 전의 어느 날이 마음 속에 펼쳐지곤 한다. 지금도 어떤 형식으로든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또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한다.
<델리아 엘레나 산 마르꼬>라는 짧은 소설에서 보르헤스는 어느 날 꼰스띠뚜시온 광장을 거닐다 담배 광고판이 바뀐 것을 바라보며 슬픔을 느꼈다고 했다. 델리아 엘레나 산 마르꼬가 세상을 떠난 후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의미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속절없이 변해가는 세계의 첫 번째 징후를 발견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나는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래서 나는 질서바른 세계로부터 뒷꿈치를 들고 서서 승객 출입구의 안쪽을 바라보곤 한다. 또다른 방식으로 정연한 어떤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Airport Song에서처럼 안개 자욱한, 또는 어느 청명한 아침의 비행을 기다리며... Won't you come on in?
 
 

2005. 11. JJ.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