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은 미래에 대한 예견만큼이나 신비로운 것이다. 
내일 아침은 유태인들이 홍해를 건넜던 일보다 
시간적으로 훨씬 가까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자 대신 후자를 기억하고 있다.
― 브로디의 보고서, 보르헤스

얼마전 우연히 <Concert for George>라는 이름의 콘서트를 보게 되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것은 2001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난 죠지 해리슨을 추모하기 위한 공연이었다. 내 삶 속에 비틀즈와 관련된 기억들이 많은 탓인지 오래도록 잊고 있던 것들이 새록새록 생각나서 이 콘서트에 대해 간략히 간추려 본다.

George Harrison (1943-2001)

비틀즈의 기타리스트로서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의 위세 속에 늘 조용한 모습으로 남아 있던 죠지 해리슨. 그는 순진하고 어눌한 목소리로 Do You Want to Know a Secret?을 노래했고, 상큼한 감각으로 Everybody Trying to Be My Baby와 Roll over Beethoven을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노래들에서는 특유의 애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던 그는 Don't Bother Me를 통해 비틀즈 제 3의 작곡자로 출발하였고, <Rubber Soul>과 <Revolver> 앨범을 전후해서 인도와 만나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나름대로 확장해갔으며, 동양종교와 기아문제에까지 관심을 넓혔다. 그 결과물로 인도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노래들을 만들어내었고, <White Album>부터 사회에 대한 관심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비틀즈 이후에는 당대의 록 스타들과 더불어 기아에 허덕이는 방글라데시의 주민들을 위해 <Concert for Bangladesh>(1971. 8. 1)를 개최하기도 했다.

1980년 존 레넌의 사망으로 비틀즈의 꿈은 깨어졌으나(그는 존 레넌을 위해 All Those Years ago란 곡을 만들었다) 밥 딜런, 로이 오비슨, 제프 린, 탐 페티 등과 더불어Travelling Wilburys란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고, Free as a Bird로 비틀즈의 향수를 다시 불러일으키기도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지 꼭 1년이 지난 2002년 11월 29일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Concert for George>라는이름으로 그를 추모하는 콘서트가 열리게 되었고, 그것은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의 재현인양 평소 그와 친분이 있는 많은 가수와 연주자들이 참가하였다.

콘서트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면면을 잠시 살펴보자면, 죠지 해리슨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기타를 연주하였고 그의 아내와 사랑에 빠져 Layla를 부르다 결국 그녀와 결혼하기도 했던 에릭 클랩턴을 먼저 들 수 있을 것 같다.(아마도 그는 이 콘서트의 가장 중요한 진행자이자 주최자처럼 보였다.)
그리고 비틀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음악을 했던 Electric Light Orchestra의 제프 린(그는 죠지 해리슨의 앨범을 제작하기도 했고 비틀즈의 Free as a Bird도 그의 손을 통해 완성되었다)은 에릭 클랩튼과 더불어 거의 모든 곡에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나친 과장이긴 했지만 E.L.O.의 전성기에 어떤 평론가들은 비틀즈가 계속 남아 있었다면 이들 같은 음악을 할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트래블링 윌버리즈 시절 같이 활동했던 탐 페티(앤드 핫 브레이커즈), 죠지 해리슨의 곡으로 크게 성공했던 빌리 프레스턴, Whiter Shade of Pale을 불렀던 Procol Harum 출신의 개리 브루커 등도 연주와 보컬로 참여하였다. 아울러 죠지 해리슨과 굉장히 닮은 청년이 내내 소리없이 기타를 치고 있었는데 바로 그의 아들(Dhani Harrison)이었다. 아마도 밥 딜런과 도노반을 제외한 그의 음악적 친구들이 거의 다 모였지 않나 싶었다. (실현 가능성은 없는 것이었겠지만 만약 Klaatu가 참가 했더라면 죠지 해리슨 스타일의 재현에 있어서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완벽했을 것이다.)

콘서트는 인도의 Ganga에서 장례를 치른 죠지 해리슨을 추모하는 의식으로 시작하여 그에게 시타 연주를 가르쳤던 라비 샹카의 딸(노라 존스가 아닌 아누쉬카 샹카)을 비롯한 인도 출신 연주가들이 다양한 전통악기로 인도음악 특유의 명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느낌은 죠지 해리슨이 비틀즈 시절 만들었던 몇몇 인도풍의 음악 Within You Without You, The Inner Light 등등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아누쉬카 샹카는 동양적인 분위기에 신비스런 곡조를 연주하였고 에릭 클랩튼과의 협연까지 포함된 Arpan이란 대곡에서는 지휘까지 하였으나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무대에서 연주를 지켜보는 라비 샹카 또한 어찌 좀 속된 정치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엑조틱한 연주는 콘서트의 분위기를 더 환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에릭 클랩튼은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 연주와 노래를 했으며, 그것은 낯선 인도의 음률과 협연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죠지 해리슨과 오랜 친분을 맺어왔던 제프 린 역시 콘서트 내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고, 아누쉬카 샹카와의 협연으로 The Inner Light을 부를 때는 긴장한 느낌마저 역력하였다.
1부(?)를 끝낸 콘서트의 중반에는 엉뚱한 누드쇼(?)를 포함한 약간 코믹한 소극도 준비되어 있는데 나름대로 유쾌하였다.

본격적인 콘서트는 샘 브라운이 Horse to the Water를 부르면서 시작하는데 연주도 아주 멋진데다 워낙이 노래를 후련하게 불러서 개인적으로는 제일 즐겨 들었던 대목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곡은 실황 앨범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아쉬움을 준다. 그녀는 이 콘서트에서 잔잔한 분위기로 Here Comes the Sun, That's the Way It Goes 등을 부른 조 브라운의 딸이기도 하다.

탐 페티는 Taxman과 I Need You를 불렀고 제프 린과 더불어 Handle with Care를 노래했다. 빌리 프레스튼은 에릭 클랩튼과 더불어 Isn't It a Pity?를 불렀는데 말미는 Hey Jude의 후렴과 에릭 클랩튼의 화려한 기타 연주로 마무리된다.
링고 스타는 작고 마른 체구에 화려한 붉은 옷을 입고 나와 자신의 히트곡 둘을 즐겁게 노래했는데 변함없는 그의 이미지처럼 편안한 모습이었고, 폴 매카트니는 수척해진 얼굴로 나와 Something을 전혀 다른 분위기로 노래하였다. 죠지 해리슨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라고 할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는 원곡에서처럼 에릭 클랩튼과 폴 매카트니가 기타와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빌리 프레스튼이 노래한 My Sweet Lord는 흑인 특유의 분위기로 해서 한층 더 가스펠의 느낌을 풍기면서 아주 신나고 멋졌고(모두다 일어나서 "할렐루야!"를 외칠 듯한~), Wah Wah는 연주자 전원이 참가하여 해피 엔딩으로 마지막 절정을 이루었다.

콘서트의 마무리는 Joe Brown(이 사람 이름은 이 콘서트를 통해 처음 들었다)이 맡게 되었는데 어쩌면 죠지 해리슨과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웠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I'll See You in My Dreams는 아주 작은 기타의 앙증맞은 연주와 마음이 담긴 듯한 잔잔한 목소리에 어울려 더 듣기 좋았다. 이 장면을 보거나 듣게 된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슴 싸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이 곡의 인트로는 죠지 해리슨의 유작 <Brainwashed> 앨범에 수록된 Between the Devil and the Deep Blue Sea와 꼭 같다.

Tho' the days are long
Twilight sings a song
Of the happiness that used to be
Soon my eyes will close 
Soon I'll find repose 
And in dreams you're always near to me
I'll see you in my dreams...
 

이 글을 쓰면서 약간의 사진과 자료가 필요해서 7, 8년전 쯤에 정리해뒀던 비틀즈 노래가사 파일을 열려고 했다. 거기에는 암호가 걸려 있었는데 나는 도무지 그것을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기술적으로 암호를 푸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것은 지난 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때 그 상태 그대로 복구할 수 없을 뿐, 그 옛날의 기억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세상이 흑백사진 같았던 시절이라고나 해야 할까... <Concert for Geoge>도 비슷한 것이어서 내 빛바랜 기억에 잠시나마 풍요롭고 행복한 색감을 전해주었다. 거기 참가했거나 콘서트를 보고 즐겼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했듯 죠지 해리슨을 위한 콘서트는 나의 추억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I Got My Mind Set on You... 저리도록 그리운 기억을 향한.

2006. 1. 28. JJ.Lee ⓒ
 

Sam Brown : Horse to the Water
음질은 보증 못하지만 노래를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