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란 예사라서 어려울게 없지만 
뜬 세상 흩어지면 또 언제 보랴*
 

비를 맞고 돌아온 적적한 밤입니다
한번쯤은 그래도 아름답지요
백번에 한번쯤 거울을 보면 스스로 아름다운 순간
변치않고 그런다면 춤이라도 출 일입니다만
그런 걸 원치는 않았습니다
후회스런 문신이 얼굴 위로 떠오릅니다
푸른 빛 감도는 
멍같은 낙인이 여기 저기 떠오릅니다
다들 외로운 만큼이지요
그러면 누군가 가끔씩 화를 내었습니다
여전히 귓가에 들리는 소리
잠결에라도 꿈결에라도 그랬으면 싶었습니다
그러면 누군가 가끔씩 웃었습니다
못난 만큼 외로운 만큼 나약한 만큼이지요
한끼 저녁을 먹지 않음에 수척해지지 않는 얼굴
한방울 눈물에 얼룩지지 않는 얼굴
그러면 빗방울 소리가 
천둥만큼이나 귓전을 울리는 밤입니다
독기어린 그 비는 산으로 흩어지며 나를 태웁니다
몇년간의 이별에도 먼지 쌓이지 않은 눈빛
만고에 빛나는 마음 달이 있는데**
한번쯤은 그래도 아름답지요
세상 무슨 이별이라도
그러면 다를 것 없는 꼭같은 밤입니다
자연스레 지나가는 너무도 평범한 밤
지금 희망을 떠올린다면
누군가 가끔씩 웃을 것 같습니다
 

1999. 6. 2. 수. 
* 경허집 ** 한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