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경 바다 안에는 오렌지 쥬스가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투명으로 꾸며진 장소, 현란하지만 어딘가 촌스럽고 쓰라린 보색의 대비입니다. 그 속을 꿈결처럼 헤엄치는 사랑이 있고, 허파로 호흡해야 하는 필연의 모순이 있습니다. 반쯤 흔들리다 잠결에 쏟아버렸고 절반은 마셨습니다. 힘차게 뻗어가는 첨단 공법의 무지개처럼 머리칼 속으로 오렌지빛 과즙이 퍼져 나아갑니다. 느릿하니 달콤한 미각을 침처럼 쏘아대는 시리고도 쓴 맛입니다.
저물어버린 딸기밭의 꿈, 잠시 들여다 본 심해의 풍경이거나 한 순간 수면위로 떠오른 숨구멍입니다. 그마저 아니라면 자-외의 고집 너머, 적-외의 외로움 속을 너울대는 눈부시고 직면하기 힘든 가시광선입니다. 현미경 연못 안쪽으로 집적회로들이 거미처럼 움직이며 접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질기고도 섬세한 무수한 발길이 부정형의 입방체를 구축합니다. 꿈을 가속하는 미지의 기술이며 닿지 않은 손길의 거짓말 같은 감촉입니다. 왼편은 볼록렌즈, 반대편은 오목렌즈로 이루어진 어지러운 색안경입니다. 늦었어, 너무 늦었어. 
논리를 형성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회의입니다. 접안렌즈에 보태어진 눈물 한방울이 출력해내는 거꾸로된 영상입니다. 배율이 맞지 않은 원근법이며 1천배로 확대되고 동결된 결정입니다. 그러면 벌레들은 그의 꼬리뼈 위의 점, 그 안으로만 줄을 이어 들어갑니다. 빨리 녹아내리는 달콤함이며, 금방 부서지는 향기입니다. 
그럼 일련의 단속적인 사건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모르스 통신이 있고 채널이 있고 여전한 길이 있어 거기, 깨진 망원경을 들여다 보면 변함없이 딸기밭과 바다가 겹쳐 있습니다. 내 손이 닿아 있는 무엇인가의 안쪽이며 그것은 문제의 바깥입니다.
 

1999.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