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훈형은 날마다 술을 먹는다.
아직도 창창한 서른 아홉일 뿐인데 그의 앞니 하나는 빠지고 없다.
술 때문에 날마다 구박 받으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먹는다.
그 새끼 때문에 마시고, 돈 때문에 마시고, 정치판 욕을 해대며
날마다 핑계를 만들어낸다.
동훈형은 날마다 밥을 거른다. 난 그가 뭘 먹고 사는지 모른다.
욕하고, 짜증을 내어야 겨우 한술 뜰 뿐이다.
피골이 상접, 어깨며 팔이며 온통 뼈뿐이다.
그는 해골이며, 그는 캄보디아 난민이며, 고향 잃은 "훈" 아저씨다.
한때 가계수표며, 대출이며 해서 신나게 돈을 뿌릴 때는
친구도 많았다.
모두들 그의 눈치를 살폈고,
레스토랑으로, 가라오케로, 호텔로 따라다니며 허리를 굽혔다.
기천만의 빚을 지고 있는 지금 '그 인간'을 찾는 사람은 별로 없다.
술 한잔만 들어가면 횡설수설 말도 많다. 
다풀어진 소설책처럼 순서도 없다.
가계수표를 쥐고 흔들땐 그 헛이야기조차
"내 말할 때 뭘 들었냐?"로 제압하던 그였지만
지금 '그 인간'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같이 보내는 저녁은 넌덜머리 나는데,
그가 없는 날은 또 허전하다.
두서없이 헛나오는 말 듣기가 괴로워 상대를 안해주면 
tv 보며 욕을 해대고, 내 삐삐에다 욕을 해댄다.
머리를 흔들어대고, 삿대질로 혼자 지껄인다.
동훈형의 이는 나보다도 더 나쁘다.
온통 썩었고, 성한 곳이 별로 없다.
날마다 이가 아파 약을 먹으면서도 치과에는 가려하질 않는다.
을러고 윽박질러도 치과에는 가질 않는다.
이래저래 갈수없는 치과임을 알지만
"abcd, 이 아프지?" 하며 난 그를 놀리고 있을 뿐이다.
동훈형은 날마다 술을 먹는다. 동훈형은 날마다 욕을 먹는다.
아무리 못먹어도 소주 한병은 먹고, 아무리 못먹어도 
그만큼의 욕을 먹고, 아무리 못해도 꼭 그만큼의 욕을 한다.
무슨 변명을 대어서라도 결제일은 넘어가고, 
가게문 열어둔채 그냥 퇴근한다.
계단을 날아 내려오고, 굴러서 내려온다.
가득한 소주병으로 킬링필드를 만든다.
금강경, 반야심경, 천수경, 해탈주
차고사, 공장고사, 항마진언, 수중 넋건짐
온갖 묘법들을 책으로 만들었건만 
그 자신을 구해줄 주문은 없다. 그의 비틀거리고 취한 넋을 건질 주문은. 이미 서른 아홉인 그의 앞니 하나는 빠지고 없다.
이미 그의 마음까지도 썩고 부서져 없다.
나는 멍으로 그의 가슴을 또 채운다.
 

1998.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