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농부들이 시위하는 것을 보았다 풍자작 풍작 사과가 풍작이니 수입은 흉작 어제 오늘 일이 아니어서 그날도 난리가 났다 농부들은 트럭에 올라 전경들을 향해 사과를 냅다 던졌다 군청 창문에도 사과가 날아갔다 번지레한 관용차에 사과가 박살났다 든든한 닭장차에 사과가 찢어졌다 타오르는 눈빛에도 아랑곳없어 전경시절의 최루탄 냄새도 다 잊어버려서 ㅡ 야 저거 정말 사과탄이네 ㅡ 한심한 이 몸은 또 킬킬대기만 했다 이억짜리 사과상자는 어디 다 달아나고 농부는 농부대로 전경은 전경대로 변명은 변명대로 오죽하면 저러겠냐 마음이 저리었다 부서질만큼 상했다는 어느 작자 "최후"*의 느낌처럼 사과도 불쌍했다 똑같이 상한 내 꼴도 불쌍했다 미안하다 아직 잊지 않았다면 내 사과를 받아라 아직 죄를 기억한다면 내 사과를 받아라 가문 해에 드문 사과 시린 맛을 알아다오 큰못 잔못 가리지 말고 내 잘못을 뽑아다오 내 마음 둘 곳 없어 나 몰라 했다 내 마음 고장나서 모르는 사이 너를 때렸다 척척 부끄러운 척도 이제 못할 노릇이니 있는 힘껏 날려주마 피하지는 말아다오 내 사과를 받아라 때늦고 철지난 오늘 나의 못난 사과를 있는대로 다 받아랏.
 
 

2001. 12. 11.
*"작자"는 이작자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