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하늘이어서 달빛이 더 눈에 띄는 밤입니다. 잠깐 달무리가 지는가 싶더니 정확히 여섯 조각으로 갈라진 달빛을 한참이고 바라보았습니다. 
멀리 론섬 올드 타운의 캬바레에서 빌리 본의 느릿한 연주가 들려옵니다. 밤 거리 자욱하니 퍼져나가는 기억입니다. 느린 곡조가 불빛을 따라 넘실대는군요. 뽀얗게 흐려진 마음을 뚫고 들어오는 뮤티드 트럼펫의 소리입니다. 
안개여서 안개인지요. 올드 타운의 걷히지 않는 안개입니다. 막아놓고 힘껏 불어대는 그 심정은 무엇일까요. 터져나올 듯 터져나올 듯 그냥 잠들어만 있던 마음이 어렵사리 전해주는 사연일까요.
은은한 배경만 저 홀로 폼을 잡고선 길고 오래도록 펼쳐져 있었던가 봅니다. 물론 그 배경을 사랑하겠노라던, 기꺼이 그 배경이 되겠노라던 즐거운 편지도 있었습니다만 그런 심정일랑은 어찌 그랬습니다.

배경없는 작자의 뒷편에 절로 배경이 만들어지는 밤입니다. 옛동네의 변함없는 Useless Landscape입니다만 그것이 쓸모있을 날도 있겠지요. 당신이 없는 밤, 매일 같이 머물고 날마다 떠나는 나의 밤의 풍경입니다. 빛이 있어 그나마 알게 될 고적한 나의 맹목입니다. 당신이 끊임없이 새로이 만들어내는 전망 좋은 방의 꿈이며 기억입니다.
 
 

2002. 9. 18. / 2004. 2. 16. JJ.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