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아한 궁전이 펼쳐져 있고, 왕자와 공주의 아름다운 사랑이 있습니다. 섬같은 눈썹, 조각배같은 눈동자, 그녀의 얼굴은 맑은 연못입니다.
 

<보물섬, 1942>
착시조형의 창안자는 자연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진화'라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천재의 작품이겠지요. 많은 곤충과 어류와 동물들은 다른 생명체의 모습을 흉내내어 자신을 위장하기도 하며, 주변의 환경과 비슷한 패턴을 이루며 자연스레 숨는 기술을 개발해 왔습니다.
람프실리스 벤트리코사라는 조개는 자신의 꽁무니에 미끼 물고기를 달고 있다고 합니다. 이 미끼 물고기는 사실은 '육아낭'이라는데 다른 물고기에 의해 삼켜지면 아가미로 들어가 거기서 어린 조개로 성숙한답니다. 분홍색 꽃사마귀의 '꽃같은 모습'이나 잔가지처럼 보이는 오차드 나방의 애벌레, 심지어는 새똥처럼 보이는 제비나비까지 다양하지요. 인위적인 선택이 포함되었지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나오는 사무라이의 투구와 얼굴을 닮은 헤이께 게의 이야기도 비슷한 경우라 하겠습니다. 약간은 불길한 느낌을 주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입니다. 또다른 그의 연작은 이보다 밝은 톤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 암스테르담 흰독수리, 1974>
미국의 조각가 슈레이보겔의 브론즈작품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달리의 작품 부분입니다. 
용맹한 인디언의 얼굴입니다. 인디언의 눈썹과 눈, 그리고 코와 뺨은 화려한 모자와 붉은 망토를 걸친 두 남자가 건배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입술은 과일이 담긴 광주리입니다. 그는 이러한 편집광적인 작품들을 즐겨 제작하였으며, 초현실주의적인 그림 속에서도 환영의 이미지로 착시조형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였습니다.

<아른하임의 영토, 1962>
산정상의 모습이 날개를 펼친 독수리의 모습이 장엄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입니다. 마그리트는 이 작품에 대한 언급에서 "에드가 앨런 포우가 무척 좋아할 예술가적 상상력을 현실화시켰다"고 말했습니다. 누가 감히 저 알들에 손을 댈 수 있을까요. 알 앞에 서 있는 나는 그 위세에 가위눌렸습니다.
마그리트의 작품들 가운데 착시조형이 가장 훌륭하게 구사된 것이라면 역시 "백지위임"과 "유클리드의 산책"이 아닐까 합니다. "백지위임"은 공간의 초현실적 굴곡이 기발하게 구현되었으며, "유클리드의 산책"은 첨탑과 그 곁으로 보이는 회색빛 길의 유사성이 놀라운 효과를 줍니다. 또한 그 모두가 투명화폭에 그려진 그림으로 설정되어 더욱 절묘한 구성을 보여줍니다.

<어린시절의 회상, 西豊和>
노을빛 물들어가는 들녘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이렇게들 즐겁게 뛰어 놀았습니다. 칼싸움하는 아이들, 나무에 매달린 아이... 부서진 나무판자 사이로 보이는 추억은 내 얼굴에 뚫린 구멍입니다. 
같고도 너무 다른 얼굴입니다만 가끔씩 그 뚫린 구멍 속에서 행복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1999. 6. 16. 수. jj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