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물 I : 1938년, 에셔, 목판> 
어두운 바다와 하늘이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물고기와 새가 모르는 사이 변해 갑니다. 극과 극이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네가티브와 포지티브의 이미지와 상징 사이에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로 그것은 영화 Event Horizon에서 주인공이 친절히 설명한 것처럼 절반으로 접혀진 종이에 뚫린 구멍 같습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여기 닿아 있습니다.

<폭포 : 석판, 1961, 에셔>

이루어질 수 없는 영구기관. 이루어질 수 없는 꿈.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몇층으로 이루어진 평면 수로에 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수로를 따라 가면 거기 불가능의 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물레방아를 돌린 물이 수평의 수로를 따라가다 그대로 다시 떨어집니다. 아무리 떨어져도 상관없는 추락입니다.
폭포의 흐름은 존 콜리어의 단편 <꿈 판단>에서의 추락과도 비슷합니다. 날마다 1층씩 떨어지는 주인공의 꿈 같은 것입니다. 그는 그로 인해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지만 결국 정신과 의사가 그의 추락을 목격합니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연계는 꿈과 현실의 알 수 없는 경계선상입니다. 절반으로 접혀진 종이에 뚫린 구멍들이 맞닿은 순간 ㅡ 어쩌면 그 주인공은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정신과 의사에게로 갔을 것입니다.

<폭포> 보다 비관적인 느낌이 강한 에셔의 또다른 작품 <오르막, 내리막>은 같은 높이의 층을 변형시킴으로써 쳇바퀴돌듯 사각형의 계단을 끊임없이 올라가며 맴돌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멈추지 않는 오르막의 숨가쁨... 바벨탑 같습니다.

에셔

네덜란드의 화가 에셔는 영국의 수학자 로저 펜로즈가 1958년에 발표한 '불가능한 삼각형'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어 일련으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오르막, 내리막>(1960)과 <폭포>(1961)가 그것입니다.
(폴 데이비스의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God and the New Phyics>에는 더글라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하>라는 책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바로 그 에셔입니다.)

<불가능한 삼각형, 펜로즈>

뮐러-라이어 착시 : 두 선분의 길이가 똑같다는 것은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입니다.

착시조형에는 알려진 몇가지 유형이 있는데 수직-수평 착시, 곡선착시, 각도-방향 착시, 뮐러-라이어 착시, 에빙하우스 도형, 헬름홀츠의 정사각형, 폰쪼착시 등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대부분의 착시조형은 이 유형의 범주에 속한 것이거나 적절히 변형되거나 응용된 것들입니다.

벌거벗은 해골? 
인간 조각에 의한 달리의 이중영상입니다. 왜 하필 소재(!)가 여성이냐고는 내게 묻지는 마십시오. 해골과 풍만한 곡선이라는 극명한 대치의 이중영상을 위한 불가피한 조처였다고 변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에일리언을 디자인한 H. R. Giger의 많은 그림들도 이와 비슷한 이중적 상징을 담고 있지만 그것은 대개 성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로테스크한 욕망이 가득한 것이지요. 에일리언 자체에도 그러한 이중영상적 암시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성미가 돋보이는 Giger의 또다른 작품은 ELP의 Brain Salad Surgery에 사용되기도 했지요. 
달리도 Enigma of William Tell 연작의 경우에는 성적 상징들을 상당히 노골적인 형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볼테르의 보이지 않는 흉상이 있는 노예시장, 1940, 달리> 
에셔가 수학적-심리학적 정교함에 기초한 놀라운 건축학적 착시를 보여준데 비하여 달리는 무의식적이고 함축적인 상징으로서의 착시조형을 통해 몽환적인 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중앙 부분에 있는 수녀상에 집중하면 볼테르를 볼 수 있습니다. 왼편의 여인은 '갈라'입니다. 반전착시의 효과가 유효적절하게 사용된 작품입니다.

<회상의 여자 흉상>(1933)은 여인의 조상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모자는 바게뜨 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에는 밀레의 만종에 나오는 부부의 입상이 있는 펜대가 놓여져 있습니다. 그녀의 목에는 옥수수가 걸쳐져 있습니다. 그가 1936년에 만든 <Lobster Telephone>의 경우에는 단순환 전화기입니다만 수화기 부분을 가재로 대치함으로써 비슷한 형태의 다른 대상이 가지는 공통점과 생경함을 환기시킵니다.

착시조형을 이용한 달리의 또다른 작품 ㅡ <나르시스의 변신>은 연못을 들여다보는 두가지의 대상을 초점화시키고 있습니다. 그 두 대상은 똑같은 실루엣을 가지고 있음에도 왼편의 그림은 고개숙인 나르시스의 모습이지만 오른 편은 새의 알을 쥔 손이 그려져 있습니다.  나르시스의 머리가 새의 알이 되고, 그의 흩날리는 머리칼은 갈라진 알에서 피어나는 꽃이 되었습니다. 같은 실루엣이 꾸는 다른 꿈입니다.

달리의 경우에는 마그리트와는 다르게 복잡한 상징성을 담고 있지만 몇몇 작품들은 마그리트와 유사한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팝아트적인 느낌이 강한 Mae West's Face which may be used as a Surrealist apartment(1934-1935)의 경우 Mae West의 머리칼은 커텐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 눈은 풍경화가 담긴 액자이지요. 코는 특이한 형태의 탁자와 시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입술은 소파입니다.

거울속에는소리가 없소/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 없을것이오... 여인과 여인의 거울상, 그리고 화장대가 해골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성의 반전상은 해골일까요. 달리와 마찬가지의 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달리의 경우와는 다르게 그림이기에 더욱 자연스럽고 현실적입니다. 

마그리트는 이런 종류의 그림을 즐겨 그렸습니다. 어쩌면 너무 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가 1950년대에 제작한 <빛의 제국> 연작 가운데 하나인 것 같습니다. <빛의 제국 I>과 <빛의 제국 II>는 대단히 정교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입니다. 
등불이 여기 저기 켜져 있는 저택의 위로 푸른 하늘이 펼쳐져있는 작품도 있고, 나뭇잎의 잎맥에 새들이 앉아 있는 그림 ㅡ <내면의 응시>도 있습니다. 크기, 명암, 시공이 전도되면서 끊임없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거기서 나를 집중시키는 것은 오직 "Dear Sir.Reality ㅡ 현실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유클리드의 산책, 르네 마그리트, 1955>

창문으로 바라보이는 원추형의 탑과 곧게 뻗은 회색빛 길이 똑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핵심적인 부분은 그 자신의 투명 이젤에 그려져 있는 그림임과 동시에 창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길의 끝은 하늘로 이어지는 것일까요. 유클리드가 경악했을 산책로입니다.

연못 위론 백조. 물에 비친 영상은 코끼리입니다. 백조와 코끼리가 같은 실루엣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입니다.

달리나 마그리트가 즐겨 사용한 착시조형을 이용한 이중영상의 기법의 유래는 16세기에 궁정화가로 활동했던 쥐세페 아킴볼드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 <가을>과 <야채의 지배자>가 그것인데, <야채의 지배자>의 경우 과일과 채소를 '주성분으로' 흉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이중 영상은 대개 '부분과 전체'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개개의 부분들이 독립적인 작은 전체를 이루면서 큰 이미지의  한부분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회화 속에서 또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중 영상은 원래 형상의 윤곽내에 감추어진 어떤 가능성을 두는 것이며, 이것은 편집증적 상징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라고 달리는 언급하였습니다. 심지어 달리는 작가의 편집증적 능력(?)에 따라 삼중, 사중의 이미지를 창출해낼 수 있으리라 보았던 것 같습니다. 위 그림에서는 연못가의 백조가 물속에서는 코끼리라는 전혀 다른 형태로 투영되고 있습니다.

<해변의 얼굴과 과일의 환영, 1938, 달리> 
착시조형이나 이중영상이 변증법적인 제3의 이미지 창조나 극과 극의 연계라는 식의 논법을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작가가 그러한 결론을 의도한 것이라면 그것은 지나치게 계량적인 사고이며 내게 있어 그것은 논리가 아니라 하나의 감각이나 느낌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해함에 있어 구조나 주제에 관한 집착이 숲을 모두 태워버릴 수도 있겠지요. 

알 수 없는 병사의 행진이 하늘로 이어지면서 세상을 떠난 형제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달리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의 일부에는 분자구조같은 상징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행진하는 군대가 입자를 이루어 신문에 인쇄된 사진의 망점처럼, 망촬영(해상도를 낮추는 선수조정작업)으로 출력된 사진처럼 허공에 형제의 얼굴을 투영하는 놀라움입니다. 
이런 환영은 때로 현실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계곡의 시냇가에 있던 얼음에는 계곡의 정경이 기록되어 있다는 이차크 벤토프식의 주장과는 좀 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기록장치를 우리 모두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지위임, 르네 마그리트> 

Akasha Recorder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초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만약 그러하다면 그것은 분명 나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가슴 아픔 역시 그런 기록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Black Box의 소재를 수색할 필요는 물론 없겠지요. 하지만 판독기를 찾아 '오르막, 내리막'을 허둥댄다면 결코 그것을 해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시각이라는 것은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가요. 두 직선이 이렇게 휘어져 보일 수 있습니다. 뮐러-라이어 착시에서는 단지 '길이'의 차이였는데 여기서는 똑같은 두 평행선들이 이렇게 뒤틀리고 있습니다.
Parallel Lines Never Separate : 착시조형은 만나게도 헤어지게도 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그야말로 알고도 계속 속는 꿈이 됩니다.
 

1999. 6. 18. jjlee.
 

PS. 
내가 좋아하는 공시성의 그물이 펼쳐져 있었던 것일까요. 이 글을 다시 고치며 정리하는 동안 우연히 신문에서 프리다 칼로(1907-1954)의 그림을 보았습니다.(그녀의 삶과 작품에 대한  페미니즘적인 시각에 관해서는 아직 개인적인 판단을 내리기 힘든 것 같습니다.)
기사 속의 그림은 <디에고와 나>라는 작품(1949)으로, 착시조형에 의한 이중영상이 사용되었습니다. 집요하게 자화상만을 그린 그녀의 그림들은 꽤 충격적이면서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눈썹이 디에고 리베로의 어깨를 이루며 이마의 중앙부가 리베로의 얼굴을 이룹니다. 하지만 리베로의 이마에는 그녀 자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눈이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