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브라운은 추리소설과 SF소설을 다수 집필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고전적인 대중 작가입니다. 그는 결코 대작이나 걸작을 쓴 작가가 아니며 대부분의 그의 작품들은 깊은 상상력이나 감수성을 보여주기 보다는 카툰작가의 그림처럼 유머러스하거나 간단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그를 좋아하는 것은 일부 SF/추리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어설픈 작가적 양심'이라든가 '엉터리 중후함' 같은 것이 없는 솔직함과 소박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터무니없는 만화같은 가벼운 것이거나 시시콜콜한 짧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를 이해하며 읽는 것은 언제나 유쾌하고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몇몇 단편들은 나름대로의 심각성을 갖고 있었는데 <광인일기>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그는 숨을 깊이 내쉬었다.
"내 정확한 기억에 따르면, 1769년 8월 15일, 코르시카에서 태어났지요. 물론 태어났을 때 일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코르시카에서 보냈던 어린시절 일은 또렷이 기억합니다..."
..."몇 년도 몇 월이라구요?"
"1769년 8월입니다. 예, 물론 그렇게 되면 나는 백하고도 칠십 몇 살이 된다는 걸 잘 압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1821년에 죽었다는 사실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조지 바인은 자신이 '나폴레옹'이라고 믿는 신문사의 기자입니다. 자동차 사고 이후 그는 그러한 망상에 시달리는데 그 자신의 판단으로는 신문기자 조지 바인이 잘못된 현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동료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 그를 '나피'라고 부릅니다.
'나피'의 기억에 의하면 그는 어느 막사에서 잠이 들은 것 같은데 깨어보니 조지 바인이 되어 신문사 기자일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자기가 영어를 이해할 수 있고, 자동차를 운전하며, 타자기를 그렇게 잘 칠 수 있는가였지요.
엄연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바인은 자신이 나폴레옹이라는 믿음에 변화가 없었습니다.(그는 장군이 되어 이탈리아에서의 첫번째 승리 이후 막사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나니... 이곳이었다는 식의 일종의 기억상실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느 정신병원에 관한 '잠입취재'의 제의를 받고 한참을 망설이며 고민에 빠지지만 결국 그 제의를 수용합니다. 자신이 환자로 가장하여 상담받고 입원하여 조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바인은 기묘한 경험들을 하게 되며 인간과는 전혀 다른 존재와 미묘한 대화를 나누기에 이릅니다.
그는 정신병원에서의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치유되기 보다는 일종의 고착상태로 '퇴원'하게 됩니다. '잠입취재' 자체가 어쩌면 치료의 수법이었을 것 같은데, 정확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잘 알다시피, 편집광이란 기묘한 고통을 안겨주는 병이다. 밖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없다. 그저 고정된 망상에 사로잡힐 뿐이다. 계속되는 중추신경 충격요법은 정신분열증을 말끔히 고쳐준 대신 그에게 고정된 망상을 심어주었다. 나는 조지 바인이며, 신문기자다, 라는.

결국 <광인일기>는 정체성 상실에 관한 이야기인 셈인데 필립 K. 딕의 경우처럼 명료하거나 절묘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욱 복잡한 상태의 종말을 보여줍니다. 죽음이라는 '해결'이 아닌 삶의 진행 속에서의 영원할 상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머리 속에 나폴레옹의 기억을 묻어둔 채 조지 바인이라는 망상을 가진 상태로 클레어와 결혼해서 계속 신문사에서 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덧없음은 유구한 불변의 것이 됩니다.

그들 가운데 속으로 웃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러나 그게 누군지 안다고 해도 더 나아질 일이라도 있을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해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단 말이다!

그의 일부 단편들은 고전적인 SF의 가벼운 형태들을 많이 보여주는데, 가벼운 터치로 기술된 <20세기 발명비화>, <JC>, <당나귀와 화성인>, <문 두드리는 소리>, <좋은 친구들, 눈딱부리 우주인> 등이 그러합니다. 체스판을 소재로 한 <충신>은 어릴 때 읽었던 만화의 원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울한 삽화>는 인종적인 편견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단편이었으며, 희화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장난>이나 환상적인 분위기의 <누드화>는 꽤 인상깊은 작품들이었습니다. 
인과론이라는 사슬이 묘하게 얽힌 <보복 우주함대>의 경우에는 매우 짧은 이야기임에도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시간 감각이 재미있었습니다. 칼리스토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미스터리 SF <백일몽>이나 전혀 다른 존재자와의 조우를 가벼운 터치로 재미있게 그린 <시리우스엔 아무것도 없었다>의 경우 약간은 촌스런 수법과 감각으로 영화화 된다면 꽤 멋질 것 같습니다.
 

1999. 7. 10. JJ.Le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