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비오는 밤의 달에 관하여 한가득 사춘기의 꿈을 꾸었습니다.
비오는 밤 구름 위에 있을 달이 믿기지도 않고, 한편으로는 참 신기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구름에 가리운 채 이 땅에는 비가 오는데 그 위에는 분명 환한 달이 구름을 비추고 있다니... 나는 구름바다 위에서 그 빛을 받고 싶었고 그것은 사춘기의 "달뜨고도" 주체할 수 없는 설익은 사랑의 느낌 같은 것이었습니다.
ㅡ 달은 가장 오래된 TV.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80년대 초엽의 백남준 비디오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어쩌면 자신의 말대로 "밥벌이 사기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가 붙이는 제목들을 좋아했습니다.
꽤 오래전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비디오 아트 작품들을 전송하고 방영하는 위성을 쏘아올리는 게 꿈"이라고 언급하였던 것이 아직 기억납니다. 꿈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쓰겠습니다.

그곳은 달의 뒷면이었다. 중력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자유로운 일인가. 그 '해방감'은 말할 수 없는 비전秘傳의 지식이었다. 
나는 단지 6분의 1의 절망만을 가질 뿐이다.
(이러한 패각추방이라면 언제든 기꺼이 받아들이리라)
나는 뛰고 또 뛰었다. 이 발자국들은 백만년을 그대로 유지한다. 
모든 걸음이 그대로 살아 있는 역사들이다! 이 가벼움, 
영영 느끼지 않아도 무방할 내 어깨의 짐, 의 가벼움이다...
<너무 작은 날개>

1999년 7월 28일에는 국내에서 관측 가능한 금세기 최후의 월식이 있다고 합니다. 오후 7시 22분부터 9시 45분까지 이어지면서 보름달의 일부가 지구 그림자에 가려지는 부분월식입니다. 8시 33분에 최고조에 도달한다는데 그 때는 보름달의 40% 정도가 가려지는 상태랍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름달의 광기에 관해선 예로부터 많은 '전설'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Lunatic"이라는 단어까지 있으니... 늑대인간이 정체를 드러내는 보름밤입니다. 조수간만에서 동물들의 짝짓기와 산란, 심지어는 여자의 몸과 사람의 정신까지 영향을 미치는 달입니다. 무엇보다도 달은...
옥토끼에서 두꺼비, 할머니, 다이아나, 여인의 얼굴까지 수천년, 혹은 수만년간 인류에게 끊임없는 로르샤하 테스트를 실시하였습니다. 그것은 물론 상상과 그리움, 마음이 출력해내는 자신만의 스크린이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TV가 그것을 대신합니다. 채널이 그것을 대신합니다. 추억의 영화든, "한시간 빠른 뉴스"든, 아홉시 뉴스든, 클로즈업 되는 누군가의 얼굴이든 우리는 그것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고, 어느 정도는 선택하고 제어합니다.
ㅡ 그러나 여전히 달은 가장 오래된 TV.
때로 무월광의 캄캄한 삶입니다. 하지만 달에서 TV로 전이되어도, 달의 스위치가 꺼져 있어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제각기 달라도 때로 같은 꿈을 꿉니다. 같은 영상을 출력합니다. 달을 보기만 하면.
 

1999. 7. 16. JJ.Lee(c).
 

PS. 오랫동안 달이 실시한 로르샤하 테스트의 분석결과는 어딘가에 복사되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