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머뭇거렸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 잔 더 술을 만들어 마시고 그리고 수화기를 집어 911을 돌렸다.
"여보세요. 아내가 죽었습니다만, 아이들이 어디있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은 수영교실에 갔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YMCA에 전화해서 여자분에게 소리쳤습니다만 그곳에는 수영장이 없대요. 아내는 정원에 쓰러져 죽어있어요."

영락없는 정신병자의 횡설수설입니다.
"나" 알렉스 스위피트는 아내 신시아를 죽였습니다. 정말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4시 14분, 다만 조금 일찍 퇴근했기에 이른 저녁을 먹고 싶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정원에서 화초와 채소 가꾸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고 부엌은 엉망진창, 아이들이 놀고 있는 방은 쓰레기장과 다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내는 내게 화를 낼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구덩이에서 갈퀴를 들고 일하다 일어서 나와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그러다 슬쩍 밀었을 뿐인데 신시아는 쓰러지면서 갈퀴에 머리를 부딪혀 죽고 말았습니다. 4시 14분.
"그건 사고였을 뿐이야. 나는 그녀를 죽이지 않았어."

아이들을 찾았지만 아이들도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은 수영장에 갔다고 하며 청하지도 않은 이웃 여인 도나가 와서 자꾸 말을 걸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아내를 죽인 사실을 눈치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전에 분명 이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아이들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여기 저기 전화를 걸었지만 아이들이 있는 곳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도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남아 나를 도와주려 했습니다. 그녀는 마법처럼 멋진 솜씨로 부엌을 깨끗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스폰지가 가볍게 한 번 스치는 것만으로 칙칙한 그림자 같은 더러움이 순식간에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앉은 의자 밑에 있는 작은 부스러기 하나를 결코 치우려 들지 않는 그녀를 보며 그것은 나를 함정에 밀어넣기 위한 더욱 복잡한 계략이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만둬!" 
"그 일을 그만두고 여기서 나가!"
"어째서 저 빵 부스러기는 치우지 않았어?"
도나는 계속 나를 도와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아내의 죽음을 이야기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는 자꾸 도나에게 화를 내었을 뿐입니다. 그녀는눈물을 글썽였고, 변명을 둘러대려는 사이 수영장에서 아이들이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이 난리통에 노래라니. 하지만 끊임없이 머리속을 맴돌아 나는 노래를 불렀고, 노래가 나를 불렀습니다.
<What's Bin Did and What's Bin Hid> 앨범이던가... 조안 바에즈도 좋지만 도노반이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한 그 앨범이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She's Leaving Home... 도나는 소리없이 집을 나섰고, 나는 처량히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How the winds are laughing,
They laugh with all their might,
Love and laugh the whole day through
And half the summer's night

Donna Donna Donna, Donna
Donna Donna Donna, Don
Donna Donna Donna, Donna
Donna Donna Donna, Don...

<Donna Donna, composed by S. Secunda>

나는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시간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시계는 4시 14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기리돌되 인살 내아"가 주문으로 이어지고 비디오 테잎처럼 나는 리와인드 되어 다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무한히 겹쳐 있는 다차원 우주의 또다른 단면으로의 순간 이동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코 회귀를 알지 못하는 타나토-노트가 회항한 것입니다.
아내는 여전히 정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를 다시 본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얼마 전(!)의 사태가 초래한 끔찍스런 결과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무척이나 조심했지만 결국 또 다퉜습니다. 아무리 아내를 달래려 해도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나를 향해 돌진해 오자 나는 또다시 그녀를 밀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떤 불상사를 초래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다시금 그녀를 붙잡으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뒤바뀐 것이 있었으니 내가 그 구덩이로 쓰러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갈퀴에 뒷덜미를 부딪힌 나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식이 사라져가는 그 마지막 순간에 내가 느낀 것은 말로써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안도감이었습니다.
ㅡ 그녀가 여기 쓰러지지 않아 정말 다행이야. 
    난 더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지. 정말 행복해.

달리의 그림에서처럼 엘뤼아르가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채 낭랑한 목소리로 <통금>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운율이 느껴지는 불어로 읊고 있었지만 나는 온전히 그 전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부기

사람들은 흥미로운 기분으로, 또 지루한 느낌으로 이 이야기를 읽었을 것입니다. "별 희안한 소릴 다 하는군." 그러나 가끔 어쩌다 있을 한 사람은 분명 나와 비슷한 안도감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믿습니다. 그는 소설 속에 있고 나는 현실 속입니다. 그 둘은 가끔 자리바꿈을 요구합니다. 아내와 나, 그와 나... 안팎이 없는 뫼비우스 띠의 표면이며,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이야기이며, 꿈 판단의 어지럼증 같은 펜로즈의 삼각형이며, 어쩌면 행복이 무엇인가에 관해 반전된 이미지로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어떤 길이 있고 힘찬 발걸음이 있고 진리가 있다 한들 나는 쳇바퀴였을 뿐입니다. ㅡ 당신이 그렇게 믿고 있는 한.

...어쩌란 말이냐 우리는 갇혔는데
어쩌란 말이냐 길은 막혔는데
어쩌란 말이냐 도시는 몰렸는데
어쩌란 말이냐 도시는 굶주렸는데
어쩌란 말이냐 우리는 무장해제 되었는데
어쩌란 말이냐 밤은 떨어졌는데...

<폴 엘뤼아르, "통금"에서>
 

1999. 9. JJ.Le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