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수염>이라는 피해망상(사실로 말하자면 망상은 아닙니다)에 관한 희안한 단편이 있습니다.
평범하고 사람좋은 조지 위나드가 해고당한 부하직원 레이 바버에게 휘말려들어가는 이야기를 독특하게 풀어낸 것인데 나는 이 단편을 생각할 때마다 이상한 공감대를 갖곤 했습니다.
단지 사장 대신하여 해고통지만을 전한 위나드이건만 레이 바버는 앙심을 품은 채 "자신의 콧수염이 보기 싫어 자기를 해고하도록 부추겼다"는 엉뚱한 사연을 퍼뜨리고 다니면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스토커에 가까운 이 사나이는 끊임없이 주인공를 괴롭히는 짓들을 하는데 그 소재는 언제나 "콧수염"이었습니다.
결국 위나드는 싸이코에 가까운 "맹목적 콧수염 혐오자"로 지목되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지경에 이르고, 가족들조차 콧수염에 관한 위나드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바라보며 가장의 "콧수염 콤플렉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콧수염의 사나이 레이 바버는 총을 가지고 위나드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총을 겨누었지만 쏘지는 않았습니다. 콧수염의 생각은 좀더 지독한 것이어서 자기가 자살하면 "콧수염 때문에 이 남자를 해고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이 남자를 죽이다."라는 각본이 성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콧수염은 자신의 배를 쏘아 자살해버렸고, 위나드가 경찰에 체포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날카로운 면도칼로 레이 바버의 콧수염을 밀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콧수염을 좋아하는 이유 ㅡ 조지 위나드의 억울하고 답답한 종말이지만 유쾌한 느낌마저 들게하는 결말이었지요.

나는 거의 맹목적인 느낌으로 위나드의 마지막 행동이 보여주는 심리 상태에 동조하곤 했는데 어느날 문득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정의되고 낙인찍힌 몇몇 성향'에 있어서 나는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각성이었습니다. 최후가 오기 전, 조지 위나드에게 어떤 처방이 효험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모두가 제각각 "콧수염"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찌 그럴 것도 같습니다. 내가 콧수염을 싫어하는 이유 ㅡ 나도 몇번이고 위나드같은 종말을 맛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 자체도, 이 생각 자체도 그러할까요?
 

1999. 10. 13. 이작자(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