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한 시간만 피는 꽃입니다.

금성에 '지구형 생명체'가 뛰논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야기다. 그것도 옛 교실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촌스런 미래에 이르러서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금성은 초고열의 지옥으로 짙은 황산의 비가 내리고 화성엔 태고에 원시 생명이 살았을지 몰라도 생명체가 현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레이 브래드버리의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금성의 아이들이라든가, <화성연대기>, <화성의 프린세스> 같은 이야기들은 끊임없는 천문학적 발견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쓰러져야 할텐데 결코 그러하지는 않다. 그 시대착오성에 사람들은 또다른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퍼시벌 로웰 Percival Lowell은 망원경으로 화성을 관찰하며 수많은 공상을 실현(?)시켰다. 그는 마치 티코 브라헤처럼 '화성의 언덕'을 세우고 부지런히 운하를 관측하였다. 화성에 운하가 있다고 단언했고, 그것들의 정밀한 그림을 그렸고, 화성의 거주자들은 귀한 물을 사용하기 위해 극관으로부터 화성의 적도지대까지 운하를 파서 살아가고 있다고 확언했다. 
이제 로웰 자신의 주장과 이론은 잊혀지고 없지만 여전히 꿈은 남아 있다. 그의 터무니없는 가설은 많은 아이들에게 풍부한 꿈을 심어주었고 많은 SF작가들에게 좋은 소재를 제공하기도 했다. 
명왕성 Pluto는 그의 이름 P.L.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하지만 그는 Lowell이 아니라 Dreamwell이었던 것 같다.)

어제는 하루 종일 교실에서 태양에 대한 공부를 했다. 얼마나 레몬과 비슷하며 얼마나 뜨거운가 하는 것을. 그리고 모두들 태양에 대한 짧은 작문과 감상문과 시를 지었다.

태양은 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한 시간만 피는 꽃입니다.

마고가 쓴 두줄의 시. 7년 동안 비가 내리는 이 별에서 아주 잠깐 태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교실 풍경이다. 모두가 아홉살. 다른 아이들은 금성에서 태어나 두 살 때 겨우 태양을 한번 보았을 뿐인데 마고는 지구에서 태어나 네살때까지 살았기에 태양의 기억을 갖고 있었다. 

한달 전 마고는 학교의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머리에 물을 뒤집어쓰는 것이 싫어서 비명을 지르며 귀와 머리를 두 손으로 가렸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녀는 조금씩 깨달았다. 자기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 그들도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를 멀리한다는 것을.

태양을 보고 기억함을 질투해서일까. 왕따가 된 마고는 비가 그치고 태양이 나오려는 순간 아이들에 의해 벽장에 갇히고 남은 아이들은 짧은 시간 태양을 만끽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내리는 비를 피해 돌아온 아이들은 그제서야 마고를 기억해내고 벽장문을 열었다. 그리하여 '마고를 끌어냈다.'는 표현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 꿈많은 외톨이가 또다시 7년을 기다리는 것도 잔인한 일이었나 보다.

브래드버리는 설명하길 싫어한다. 아니, 어쩌면 너무 간단하게 말해서 탈인지도 모르겠다. 핵심적인 부분들을 여기 저기 조금씩 흩어놓아 끈기있게 읽기를 요구하는데 수양이 부족한 나는 늘 그걸 참기 힘들어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곤 했다. 하지만 그의 피곤한 수법을 찬찬히 살펴보면 누구나 그 아름다운 조각그림 맞추기에 재미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영화와 만화영화의 엉뚱한 비현실성은 브래드버리 류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의해 환상이 깨어지면 또다른 환상이 그 자리를 메운다.
그것은 꿈이라는 이름의 자기증식형 기계 ㅡ 폰 노이만 머신이며, 항공모함처럼 생긴 우주선이 시공을 초월한 워프 항해를 하거나 증기기관차를 우주 공간에 띄우는 유일한 동력이다. ㅡ 모든 여름을 이 하루에, 그리고 모든 꿈을 이 한 순간에.
 

1999. 11. 28. jjle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