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2월 17일.
페루 리마에서는 아오키 모리히사 페루 주재 일본대사가 각국 대사 및 정부 각료들을 초빙, 일왕 탄생일(23일) 기념리셉션을 벌이다 한 테러단체로부터 공격을 당하여 전원 인질로 잡히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들은 종신형을 선고받고 투옥된 MRTA 지도자 롤란드 폴라이를 비롯한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하였으며, 관철되지 않을 경우 인질들을 전부 살해하겠다고 협박하였다.

Tupac Amaru.
이 생경한 이국의 이름은 Cusco의 <Apurimac>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슬픈 느낌을 준다. 이 앨범에는 단순하지만 잉카의 이미지를 잘 투영해낸 아름다운 곡들이 많다. Andes, Inca Bridges, Amazonas, Inca Dance, Flying Condor, 그리고 Athahualpa - the Last Inca와 Tupac Amaru라는 곡이 있다.
Cusco가 1985년에 발표했던 앨범이다.

 
Apurimac, Cusco

1533년.
Francisco Pizarro는 Atahuallpa를 처형하였다. 
1572년.
스페인 군대는 잉카의 마지막 저항지였던 빌카밤바를 점령하였고 곧이어 투팍 아마루가 그의 아내와 함께 체포되었다.

스페인이 침공했던 1529년 무렵 잉카는 아타왈파와 동생 와스칼의 권력투쟁이 종결되지 않았었고, 스페인 궁정에서 코르테스를 만난 피사로는 그로부터 전수받은 전술을 통해 너무도 쉽게 인구 천만의 제국을 손에 넣었다. 코르테스는 목테즈마(몬테즈마)를 잡음으로써 아즈텍을 손에 넣었고 피사로는 아타왈파를 통해 잉카를 지배하게 되었다.

아타왈파는 피사로가 쿠스코에 입성한지 얼마되지 않아 인질로 잡혔다가 프란시스코라는 세례명으로 처형당한 잉카의 마지막 왕이었다. 그는 아즈텍의 목테즈마와 마찬가지로 참으로 무력하게 굴복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잉카의 역사가 끝이 난 것은 아니었고 스페인의 묵인하에 힘없는 왕이 줄을 이었다. 어떤 왕은 꼭두각시로 살다 암살당하기도 했고, 또 어떤 왕은 스페인에 대항해 싸우다 처형당했다. 아타왈파의 죽음 이후 사이리 투팍까지는 계속적인 굴욕의 시대였다. 하지만 투팍 아마루는 달랐다.

1984년.
투팍 아마루는 페루의 과격 좌파 운동으로 1984년에 결성되었고 이들의 페루 주재 일본 대사관 점거는 그보다 한참 뒤인 1996년 12월에 발생하였다.
페루 최대의 좌파 무장세력은 모택동 주의를 근간으로 밀림지대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센데로 루미노소(빛나는 길)"이며 투팍 아마루는 주로 도시지역에서 게릴라 활동을 해왔다.
 

 
(내가 투팍 아마루라는 '테러단체'가 있음을 처음으로 안 것은 1980년대 말쯤 외신면에 조그맣게 난 단신을 통해서였는데 잉카의 역사와 쿠스코의 노래를 떠올리며 묘한 느낌을 받았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런 면으로 약간의 편집광적인 증세를 가진 나는 스스로 그것을 'Perunoid'라고 진단한다.)

1997년 4월 24일.
조선일보의 이규태 코너는 투팍 아마루 사태를 언급했는데 모든 정치적인 이슈를 무시한 채 '폭력적 인질극'이라는 측면에서 아타왈파 인질사건과 투팍 아마루 게릴라의 인질사건을 똑같은 것으로 보고 있었다.
'사상 최장의 파티'라는 경망스런 제목의 글을 통해 (그로선 당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후지모리를 '위인'이라고 칭했고(테러범과는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는다는 모 국가의 정책을 연상케 한다) 지금 그 위인은 독재자로서 인기를 꽤 많이 잃어버렸다. 그는 얼마전 원주민 출신의 경쟁자와 힘겨운 승부를 겨루어야 했다. 이규태씨가 지금도 그를 위인이라고 할지 적이 의심스럽다.
아즈텍의 정복자 코르테스는 멕시코에서 배척당하고 있지만 피사로의 동상이 여전히 건재함은 페루 사태의 본질과 가까운 무엇이 있는 것 같다. 

1985년 봄.
내가 전경으로 처음 출동한 곳은 입대한지 몇달도 되지 않았던 1985년 봄, 서울이었다. 방석복에 투구, 경찰봉을 쥐고 있었지만 그래봤자 신출내기들이었던 우리는 시위 현장의 외곽을 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서울역 부근에서 대모대가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1984년'은 어디로 갔는지 오적과 똥바다와 타는 목마름은 또 어디로 가버렸는지 방석복 속의 나는 막연한 적의로 가득 차 있었다.
학생들의 반미감정이 극에 달했던 그 무렵 미대사관 점거사건이 있었고, 나는 그때 여의도의 어느 방송국 별관 정문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선 시간, 술에 만취한 방송국 직원 한 사람이 음료수를 사 들고 정문을 들어서며 내게 말을 걸었다.
"그들도 밤을 새우고 당신들도 여기서 밤을 새우니 나도..."
그의 이야기는 시대의 비극에 관한 센티멘탈한 넋두리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 순간 약간의 '스톡홀름 신드롬'을 앓고 있었다.

1572년 3월.
스페인 부왕 토레도의 사자가 살해된 것을 계기로 잉카와 스페인은 다시금 전쟁을 벌였고 이때 투팍 아마루는 스페인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그야말로 '마지막 잉카'였고 그의 죽음으로 잉카의 역사는 영영 끝을 맺었다. 아타왈파를 볼모로 한 스페인의 수탈도, 투팍 아마루의 인질극도 파티는 분명 아니었다.

1997년 4월 22일.
투팍 아마루의 일본 대사관 점거 사태는 126일을 끌다 무력진압으로 끝을 맺었다. 최후까지 남아있던 인질 72명 중 1명을 제외한 71명이 모두 무사히   구출됐으나 지도자인 Nestor Cerpa를 비롯한 MRTA 14명의 멤버 전원이 사살되었고 페루 보안군 2명이 숨졌다.
인질 사태가 비극적으로 막을 내린 후 투팍 아마루는 기자회견을 통해 특정 대통령을 상대로 하는 전쟁은 계속하지 않겠지만 조국의 야수적인 억압체제에 대한 항거는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MRTA로 지칭되는 투팍 아마루의 공식 명칭은 "The Tupac Amaru Revolutionary Movement"이며 오늘날 MRTA는 종종 진보주의로 오인되는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와 IMF, 그리고 세계은행 World Bank의 정책에도 반대한다고 한다.

2000년 5월 28일.
야당인 '페루 파서블'의 알레한드로 톨레도 후보가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로 후보직을 사퇴, 후지모리 단독 후보로 결선투표가 강행되었다. 미주기구 선거감시단 역시 선거의 신뢰성을 비판하며 철수를 선언하였다. 그는 이제 페루의 3선 대통령이 될 것이다.

Calchakis의 <Pan Pipes "El Dorado"> 앨범에도 Tupac Amaru란 노래가 있고, 예전에 어느 국내 화장품 광고에서 Cusco의 Tupac Aamaru를 사용하였다. 상큼한 미인의 피부에 어울리는 플룻 소리였을까. 
 

2000. 5. 28. mkle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