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카의 정경은 오래도록 내 마음 속에 있었다. 300평방킬로미터가 넘는 광활한 평원에 거대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끝이 없는 이중나선의 꼬리를 지닌 80미터나 되는 원숭이(한 손은 다섯 손가락, 다른 한 손은 네 손가락을 가지고 있다)나 30미터에서 300미터까지 다양한 크기를 지닌 18개의 새의 그림들(벌새가 많다)은 특히나 아름다웠다. 어릴 적의 즐거운 상상처럼, 또는 에리히 폰 대니켄의 바보스럽고도 저의 가득한 주장처럼 외계인의 솜씨는 아니라고 해도 그것의 신비함과 놀라움은 여전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나스카 대평원의 기적같은 작품들 못지 않게 내가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바로 이 그림들을 연구하고 지키는데 평생을 바친 마리아 라이헤의 삶이다. 1903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녀는 스물 아홉 처녀의 몸으로 독일에서 페루로 과외선생이 되기 위해 떠났던 사람이고, 또 거기서 새로운 호기심과 의무감에 이끌리어 자신의 삶을 나스카에 바쳤다.

나스카 도형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은 1930년대 나스카의 대평원으로 비행 항로가 개설되면서부터이다. 나스카 부족은 대평원을 제도용지처럼 사용하면서 정교한 그림을 그렸고 비행기의 출현으로 인해 그것이 "공중에서" 발견된 것이다. 
나스카는 지역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1만년 동안 거의 비가 내리지 않은 지역으로 대략 1500년전부터 만들어진 아주 얕은 고랑으로 이루어진 이들 그림이 지금껏 보존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그림의 목적에 관해서는 많은 해설이 있었지만 확증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젠가 TV에서 본 다큐멘타리는 그것이 비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프로그램은 다수의 그림이 '개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데 근거하여 그것이 물을 가두는 기원을 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과 주변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직선들의 존재에 관해 그들은 별다른 해석을 보이지 않았다. 그림에 그런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게 전부인 것은 아니기에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글자 그대로 아전인수의 느낌이 많다.

1941년 파울 코속 교수는 페루로 가서 나스카의 그림들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코속은 후일 라이헤가 나스카의 문양을 연구하게 된 계기를 부여한 사람이다.
1968년 제럴드 호킨스 교수는 나스카에 있는 93개의 그림들과 45개의 별에 관한 자료들을 컴퓨터에 입력시켜 나스카 선들의 배열과의 연관성을 조사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75년 11월 21일엔 짐 우드맨과 줄리언 노트는 고대 이들의 직조술이 오늘날에 못지 않은 빼어난 기술이었음에 착안, 페루 원주민들과 기구를 제작하여 띄우는데 성공하였다. 그들은 나스카 고분의 수의를 견본으로 기구의 재질을 만들고 장작으로 열을 내어 비행한 것이다.
잉카의 전설에도 하늘을 날아 적의 정세를 살폈다는 소년의 이야기가 있어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두 모험가가 고대의 소재들을 이용해 공중을 날았다고 해서 이들 부족이 열기구를 사용했음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남미에서 이스터섬까지 모험적인 뗏목 항해를 감행한 토르 하이에르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리에서 꼬리까지 100미터가 넘는 길이를 지닌 새

마리아 라이헤는 코속 교수의 견해처럼 일종의 천문 캘린더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들을 정확히 측량하고 보존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바쳤다. 쉰을 넘긴 나이에 헬리콥터에 매달려 대평원을 날며 사진을 찍었고 끊임없이 제도하고 측량하며 바나나와 호두만으로 식사를 대신하였다.
누군가를 구원한 것도 아니고 세상에 희망을 보여준 것도 아니지만 그녀의 삶은 내게 무척이나 각별한 의미를 준다. 그녀의 하얀 머리와 열기에 시달린 주름 깊은 피부에 새카맣게 빛나는 눈동자는 그녀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그녀 자신이 바로 사막의 일부라는 평이 결코 과장은 아닐 것이다.
마리아 라이헤는 그림의 보존을 위해 사막 바깥의 고속도로변에 전망대를 세워 사람들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마치 달표면인양 자동차 바퀴자국이나 발자국조차도 수십, 수백년씩 남아 있을 수 있는 지역이지만 (코속교수의 발자국도 남아 있다고 한다) 인적없는 고요의 바다는 아니기에 그림의 보호에는 그 만큼 어려움이 많다.
1997년 무렵에는 새 그림의 일부가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한국의 모 광고회사가 CF촬영을 위해 착륙금지장소에 무리하게 헬기를 착륙시키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를 향해 뛰는 대한국인의 손도장이다.
또한 엘니뇨로 인해 나스카 지역에 폭우가 쏟아져 적어도 1500년을 버텨온 그림들이 손상을 입기도 했고, 나스카의 작법을 모방한 광고와 선전문구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 일에든 결코 확실한 해답을 찾을 수 없을 거예요. 그에 대한 답변을 할 때마다 또다시 수없이 새로운 의문들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ㅡ 마리아 라이헤

나는 활주로처럼 보이는 직선과 도형, 다양한 그림과 문양의 이미지들을 뒤적이는 것을 좋아한다. 마리아 라이헤의 거칠게 그을린 얼굴을 떠올리며 그녀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스카의 그림들에 어떤 의미나 비의가 숨겨져 있든 그것은 나스카-라이헤의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온갖 상상이 교차하는 '지점선'이기 때문이다.
 

2000. 7. 13. mkle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