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에 한번씩 반석을 닦아 그 반석이 닳아 없어져도 끝나지 않는 세월에 관해 읽은 적이 있다. 성 하나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놓고 백년마다 하나씩 꺼내어 그 씨가 다 없어지기까지의 시간을 헤아리던 이들도 있었다. 그토록 유구한 세계 속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이라면 만남의 기억이란 그 반석을 닦는 한 장의 흰 천이거나 겨자씨 한톨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래를 부르다 어떤 음정의 특별한 떨림에서 누군가를 기억한다. 오래된 옷에서 꼭 그만큼이나 오래된 낙서를 발견하고 가물가물한 그날을 되짚어 보기도 한다.(내 구부정한 행색은 얼마나 볼품없는 것이었으며 가끔씩 들러겠노라던 말은 지금쯤 어느 마음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아침에 깨었으나 소파에 누워서 가져보는 잠깐의 안온함, 담요를 끌어당기며 창밖을 바라볼 때, 텔레비젼의 아침 방송을 무심하게 바라볼 때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바라보던 느낌을 떠올리기도 한다. 겨우 몇초 사이 지나쳐버린 길, 무수한 연꽃으로 뒤덮인 강의 풍경도 가끔은 그려본다. 
몇 가지 커피의 뒤섞인 향기와 활짝 핀 벚꽃의 거리는 또 어떠한가. 그것은 슬픔이기도 하고 사무치는 그리움이기도 하며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예기치 못한 반가움이기도 하다.
기억이라는 이름의 건축은 세월의 풍상을 따라 퇴색하고 낡아가고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런 느낌들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일주일씩 보름씩 잊고 지나치기도 하고 한달이 넘도록 그 느낌을 젖혀둔 채 지내기도 한다. 몇년씩 잊고 살기도 하고 아예 잊어버려 그런 일이 있었던 것조차도 확신하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느끼고 바라보며 만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마음의 유전자 같은 것이어서 개체와 종족이 미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내 안에 존재한다. 수천 칼파 이전에 헤어졌지만 헤어진 적이 없노라던 말* 또한 그러한 결합체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두는 어떤 이에게 있어 하루의 일이라고 한다.
 
 

2003. 11. 18. JJ.Lee ⓒ
 
 

*대등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