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만남의 기억 : 에테르방 <이작자 여인숙>

또다른 만남의 기억

그것도 소식이라면 소식이었을까. 어느 작가의 에세이 한 페이지에서 "간접화법"으로 씌어진 몇줄의 쓰린 사연을 보았다. 객지에서의 숨막히는 고적함에 관한 짧은 인용 ㅡ 누군가 그 책을 찾아와 내게 펼쳐 보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쳐 갈 것 같은 그 짧은 대목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눈길을 멈추어야 했다. 왜냐면 그가 인용한 말의 주인공은 내가 삼십여 년을 지켜보아온 어떤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작가가 보내온 어느 엽서에 그 '주인공'이 답하지 않았다는 말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하지만 사연은 그렇게 잠깐으로 끝이 나고 작가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 버렸기에 나는 그 페이지 속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책의 제목조차도 지금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은 잘잘못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그런 쓰라림의 편린으로 누군가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고 세월이라는 이름의 진통제에 마취된 채 무디고도 둔탁한 느낌을 다른 이에게서 맛보고 싶지는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쓰라림에 관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진실과 배치되지 않은 채 가능한 한 많은 기억들을 밝고 즐거운 풍경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만남의 한 장면만을 지금 이 페이지에 옮겨오더라도 그랬으면 싶고, 그럴만한 능력이 내게 없다면 그저 마음에 담아두는 것만으로 충분한 일이 될 것이다.
지금은 누가 사는지도 모를 어느 방의 밋밋한 형광등 불빛이 가끔은 몹시도 반갑다. 그 불빛 아래 머물러 있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며 그런 의미에서 기억이란 오자 하나 없는 정연한 기록이 아니다. 다만 기록이 때로 진실을 비껴가듯이 나도 가끔 그렇게 할 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까닭 또한 그러하다.

그가 나와 함께 꿈을 꾸고 있는 꿈을 꾸었어요.
ㅡ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