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 커버에는 지난 여름의 잔재가 흩어져 있다. 이름모를 작은 곤충들의 말라버린 껍질이 불빛을 흐릴 만큼이다. 어느 여름 밤엔가 유리창에 가득 붙어 있던 푸른 빛깔의 날벌레들이었다. 그들이 내 삶으로 날아 들어와 내게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모든 존재는 어떤 식으로든 기록을 남긴다. 그 기록이란 넓은 의미의 텍스트와 비슷한 것이어서 반드시 가시적이고 판독 가능한 형태일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존재도 마땅한 규칙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매일 무엇인가를 나름의 방식으로 베끼고 있을 뿐이고 그것은 누군가의 삶을 향해 불현듯 날아드는 나의 하루다. 그 하루 동안 내가 아는 사람을 흉내내고 그의 마음을 재생시키며 처음 보는 얼굴을 애써 기억하기도 한다. 책의 한 구절을 마음속에 새기는가 하면 싸늘한 한줄기 바람의 느낌을 온몸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엉성한 기록계는 실수도 잦다. 내 마음의 카메라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엉터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에 너무 바쁘다. 녹음기는 때로 잡음을 일으키고 오동작을 하기도 한다. 그것이 작위적인 것인지 아닌지에 관해서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오늘날 나 자신의 일을 이루었음은, 내 일의 모든 것 ㅡ 전부가 되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지속성과 변화의 주기를 좀 더 빨리 하였으면 한다. 
나스카의 그림처럼 그렇게 남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 그림이 지워지고 전설만 남았다 한들 그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당신 기억의 형광등 아래에서 말라버린 존재 ㅡ 세상 모든 장소가 일년에 비 한 방울 보기 힘든 건조지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틸데는 네루다가 그 꿈 이야기를 해주길 원했다.
"그녀가 나와 함께 꿈꾸고 있는 꿈을 꾸었네."라고 그가 말했다.
ㅡ 꿈꾸는 데 날 빌려줍니다, 마르께스
 
 

2003. 12. JJ.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