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날씨치고는 따사로운 날의 연속입니다. 우리나라가 점차 아열대 기후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 조금은 실감이 나는 듯도 싶습니다. 
하지만 겨울은 겨울, 한산하고 지루한 낮시간의 한기 속에서 막연히 남국의 풍경을 그리곤 하였습니다. 
이럴 때면 니노 페레의 <남부>라는 노래가 딱 어울립니다.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아련하고 조금은 그리운 느낌입니다. 백야처럼 이어지는 끝없는 여름의 느낌은 어떠할지 잠시 생각해 봅니다. 지루함과 혼미가 그것의 이름을 대신하게 될련지요.
보르헤스의 단편 가운데도 <남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픽션들>에 수록된 마지막 단편이지요. 계속해서 악운이 따르는 주인공이 급기야는 죽음에 직면하기까지의 상황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보르헤스 자신은 이 단편에 대해 꽤 좋은 평을 하였습니다만 그것을 읽은 나는 맘이 그리 편치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에게 유리한 길, 좋은 길만 선택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가끔씩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엉뚱한 삶을 택하기도 하고, 스스로 자포자기하기도 합니다. 남부의 주인공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운명인지 혹은 하찮은 불운의 격발 같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것이 본질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사소한 시비 끝에 자신 앞에 던져진 칼을 거부하지 못하고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사람,  잘 사용하지도 못하는 칼을 쥐고 결투를 위해 밖으로 나가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이작자도 가끔은 그렇게 대책없는 칼을 쥐고 어딘가를 쓸데없이 헤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한 장면이 삶 전체를 함축하고 있다 생각한다면 지나친 감상일지요. '단편적인' 작자가 보는 짧디 짧은 생각일지요.
칼 쓰는 법을 더 연마해야 하는지, 날을 더 벼려야 하는지, 어디서 참고 어떻게 견디며 어떤 방식으로 물러서고 나아가며 굽혀야 하는지...
삶이라는 우리 모두의 남행(南行)에서 니노 페레의 노래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운드르의 짧은 칼"과는 또 다른 남부의 칼날이 무디어지기만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겟습니다만.
 
 

2004. 1. 7. JJ.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