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처음으로 브라질에서 한 주를 지냈어요.
돌아와서 일주일 내내 쌈바 얘기를 해줬어요.
쌈바가 우리의 삶에 들어온 거예요.
― <남과 여>

대단한 영화팬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런저런 비디오 테잎은 꽤 갖고 있습니다. 동생의 소장품을 물려받는 탓에 아직 보지 않은 것들, 제목도 처음보는 것들도 꽤 있습니다. 그것들이 나무 상자에 가지런히 꽂혀 있던 풍경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그리 많지도 않은 DVD 타이틀을 오래도록 잊고 있었습니다. 며칠전 우연히 무얼 찾다 잠시 그 디스크들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발견 아닌 발견을 하고서는 좀 부끄러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새벽의 7인>이랑 <남과 여>, 그리고 테리 길리엄과 데이빗 린치의 몇몇 타이틀을 보며 반가웠지요.(이제는 조안 바에즈의 노래가 나오는 <침묵의 질주>와 <사랑의 블랙홀>만 찾으면 되겠습니다.)

<남과 여>는 오직 한 대목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프란시스 라이의 테마가 참 낭만적이지만 삐에르 바로가 노래하는 "쌈바 싸라바"가 나오는 장면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장면이 내게 주는 즐거움은 "쌈바 싸라바"의 원곡 ㅡ 브라질 쌈바와 보싸노바의 역사, 그리고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 자신의 삶을 노래한 ㅡ "축복의 쌈바 Samba da Bencao"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곡에서부터 숱한 다른 버전까지, 그리고 삐에르 바로의 노래까지 수없이 들어왔지만 영화 속의 장면을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영화 속의 배우도 그저 그랬고 꽤 촌스런 영상이었습니다만 "쌈바 싸라바"가 흐르고 있었기에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비니시우스의 가사와는 좀 다른 노랫말이지만 자막으로 해석이 나왔습니다. 말하자면 이 노래는 "축복의 쌈바" 곡조와 가사를 프랑스 친구들에게 전해주는 형식이었습니다.
국내에서 발매된 <남과 여>의 타이틀에는 불어 뿐만 아니라 영어 더빙 버전도 포함되어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소리를 영어로 선택하면 노래도 영어로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사와 연주가 꽤 차이가 있어 그것도 꽤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주 느릿한 템포이지만 틀림없는 쌈바 리듬을 지닌 "쌈바 싸라바"의 한 대목을 옮겨 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영화 자막의 특성상 생략되었거나 어색한 부분은 적당히 고쳤습니다.)

슬픔없는 쌈바를 추는 건
얼굴만 예쁜 여자를 사랑하는 것,
바로 이 노래를 만들어낸
브라질의 시인이자 외교관인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가 그렇게 말했어
그는 자기가 브라질에서 제일 검은 백인이라고 했지
― 쌈바 싸라바, <남과 여>

<남과 여>는 1966년 Cannes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는데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는 그 영화 속의 노래와도 관련을 맺고 있고, 그 해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도 참가하였습니다. 극작가와 영화평론가로서도 오래도록 활동했던 그가( 무성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Cannes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59년으로 그가 원작을 썼던 마르쎌 까뮈의 <흑인 올페>가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의 경력에 빛이 부족하였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꽤 많은 보싸 노바 곡들은 어떤 의미에서 슬픔이 없는 쌈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싸 노바가 내게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의 삶이 그 속에 있고, 쌈바의 희미한 자취와 리듬이 그 속에 남아 있는 까닭입니다. 영화 속의 이야기처럼 그로 하여 쌈바가 나의 삶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노래가 나오는 영화처럼 어떤 그림의 한 조각을 흑백 화면으로 그려봅니다. Un Homme et une...

이 노래를 연주했던 이 사람들과 
다른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네
오늘밤, 취하도록 마셔서
이 모든 것에 열광하고 싶네
당신들 덕분에 쌈바를 알았네
― 쌈바 싸라바, <남과 여>
 
 

2004. 8. 11. JJ.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