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코니카에서 나온 레비오 카메라를 사서 잘 쓰고 있다. 지금까지는 계속 자동모드로 찍어왔고 어제 처음으로 수동모드를 연습해 보았다. 컴팩트 카메라여서 뭐 그리 대단한 의미가 있겠냐만 차츰 배워볼 참이다.
작자는 대체로 물건을 조심스레 사용하는 편인데 레비오 구조상 바디에 상처가 좀 생기게 되어 있다. 렌즈를 보호하는 두껑이 제 몸을 갉고 있다니... 쩝. 화려하고 편리한 기능들은 없지만 여러모로 이작자에게, 이작자 마음에 딱 어울리는 카메라인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때로 사진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이미지의 적으로 여기곤 한다.('구체적' 보다는 '단편적'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동영상이 그 '단편성'을 극복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장 좁은 의미의 텍스트가 가장 많은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여하튼 잠시 이곳에서 그 애매한 적과 함께 할 생각인데 그것이 언제까지일지는 잘 모르겠다.

여름도 저물어가던 어느 날, 가게에 있는 허브 화분(로즈마리)에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크기의 곤충 한 마리가 날아와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게 언제 어디서 왔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잠시 앉아 쉬는 줄 알았던 그 곤충은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계속 그렇게 그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거의 거꾸로 매달린 듯한 불편한 자세를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냥 그렇게 꼼짝않고 멈추어 있었다. 
여기 왜 이렇게... 이런저런 소소한 (정말 소소한 것들이었다) 의문들 속에서 어딘지 대단히 '불법적인' 느낌이 드는 것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새로 산 카메라의 연습 상대로 그 곤충을 택하여 꽤 여러 장을 찍었으나 대부분은 초점도 잘 맞지 않은 엉터리였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또 카메라를 가까이 대다 손길에 부딪혔는지 곤충은 그만 그 자리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떨어져도 그 자세는 그대로 변하지도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도둑질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잠시 당황하다 바닥에 떨어진 곤충을 집어서 그냥 화분에 얹어두고 말았다. 이것도 어딘지 좀...
아무튼 잠시 화분 받침대에 앉았는줄 알았는데 정말 그랬다. 그렇다... 정말 잠시 쉬었다는 것.

만약 생각이 삶이고 힘이고 숨이라면 
그리고 생각 없음이 죽음이라면...
ㅡ 윌리엄 블레이크
 
 

2004. 10. 10. JJ.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