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게 어떤 시간의 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작년 여름 어느 날엔가 가게 벽에 걸려 있는 시계가 참 위태로와 보였다. 내려서 보니 벽에 붙어 있는 걸이는 다 삭아서 부러질 지경이었고 그것 떨어졌다가는 아래에 있는 기계를 다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걸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새로 달고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긁어 부스럼이란 소리가 딱 어울리는 어리석은 작자가 다음날 가게 나와서 보니 시계는 바닥에 나동그라진 채 부서져 있었다. 참 멍청하다 싶었으나 이미 망가진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조금 지루하거나 시간이 궁금해질 때, 그냥 또 습관적으로 휑하니 남은 빈 자리에 절로 눈길이 가곤 했으나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시계를 보던 습관은 시계가 있는 벽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습관으로 바뀌었고 결국은 둘 다 잊어버렸다. 새로 시계 하나 마련한다는 것도 차일피일 미루다 여태 빈 벽에 시계 자국만 남겨둔 채 지내온 것이다. 시계 있던 자리만 하얗게 되어 좀 보기가 그랬으나 기가막힌 게으름으로 꿋꿋하게 견디어 온 셈이다.

1년하고도 2, 3개월은 더 지난 며칠 전, 몇번이고 마음을 먹은 끝에 드디어 시계 하나를 새로 마련하였다. 다행이 싼 값에 큼지막하고 나름대로 모양도 무난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진열대에서 볼 때와는 달리 막상 달고 보니 전에 쓰던 시계보다는 꽤 작았다. 그래서 하얀 얼룩(세월이 한참 흐르고 보니 시계가 붙어 있던 하얀 부분이 도리어 얼룩처럼 보인다)이 시계 주위로 둥그렇게 삐져 나오는데 아무래도 보기에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페인트칠을 다시 할 때까지는 그냥 그렇게 두고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면 더 시간이 흘러 비슷해질 때까지거나. 
하지만 그 자국은 시간의 잔영처럼 시계 둘레를 돌며 묘한 느낌을 주곤 했다. 많은 지나간 날의 흔적도 비슷할 것 같은데 늘 터무니없이 작은 생각과 감상들로 그것들을 가리려만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초침, 분침, 시침의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테두리까지의 경계를 가리켜 우리는 '시계'라고 부르는데 그 '시계' 바깥의 흰 테두리는 그럼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잠깐 생각해 보았다. 달리의 그림에서처럼 녹아내릴 듯 늘어지지도 않았고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에서처럼 요란스러운 각성도 아니었으나 시계 바깥에 펼쳐져 있는 너무 적나라한 어떤 시계.
 
 

2004. 10. 12. JJ.Lee ⓒ
(사실 이 글에는 구차한 사연보다 사진 한 장이 더 필요한 것이었으나  ― 꽤 여러번 시도는 했었다 ― 시계와 시간의 질감을 잡아낸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물론 글도 마찬가지겠으나 익숙한 만큼 조금 덜 부끄러운 까닭에 지금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