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들은 아름다운 '쓸모없는 노력들'이고, 
또 어떤 것들은 우울한 '쓸모없는 노력들'이다.
물론 이렇게 아름답거나 추하다고 분류하는데
우리가 항상 의견의 일치를 보는 것은 아니다.
―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iPod을 쓴 것이 이제 세달쯤 되었는지 모르겠다. 요즘 들어 부쩍 아이팟 만지는 것이 취미생활이 되어 "쓸모없는 노력들"을 기꺼이 지속하고 있다. 이 자그마한 플레이어 속에 그 기본적인 용도에 맞추어 꽤 많은 노래를 넣었고 그리고 시와 소설, 약간의 경전과 에세이도 포함시켰다. <산촌여정>과 <쌈바 싸라바>, 어느 책의 간략한 금강경 해설판에다 빌 에반스와 캐넌볼 애덜리의 연주, 그리고 나의 <다 녹은 초콜렛>까지를 그 속에 담을 수 있었다. 연한 하늘색 불빛을 배경으로 음악이며 글이 흐르는 그 느낌은 또 얼마나 각별한 것인지 모른다. 실없는 욕심으로 이것저것 집어넣다 보니 검색과 정리, 그리고 'know-where'의 문제가 생기는데 아이팟은 그런 면에서 편리한 점이 많았다.  
  
이 아이팟을 제어하는데 있어 iTunes는 필수불가결의 소프트웨어다. 처음에는 좀 싱겁고 막막한 느낌도 없지 않았던 이 프로그램은 단순함과 복잡함이 묘하게 얽히어 음악 파일 정리와 CD 레코딩, 인터넷 라디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얼마 전부터는 60년대 싸이키델릭 채널에 가끔 귀를 기울이는데 가장 최근에 기억에 남는 노래는 <아이오와, 한 소녀의 이름>이란 곡이다.) 

몇 달간 탈없이 사용해오면서 아이튠즈의 기능들을 하나씩 배워가던 참이었는데 어제는 뭔가 다른 프로그램을 설치하다 아이팟과 컴퓨터의 연결이 끊어져버렸다. 이 링크가 없으면 아이팟으로 노래를 카피하는 것도 힘들고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다. 소프트웨어를 다시 설치해도 아이팟을 리셋시켜도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엔 노트북을 다시 포맷하는 것까지 고려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 이전에 최후로 시도한 일은 윈도우 XP에 내장된 복원기능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2005년 2월 7일 아침 모 소프트웨어 설치에서부터 문제를 일으킨 까닭에 복원시점을 2월 7일 아침으로 세팅을 했으나 문제 해결에 실패해서 2월 6일로 설정을 맞추었는데 놀랍게도 단 한번에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다행히 그 이후에 변경한 여타의 자료들에는 별다른 손상이 없었다.  

윈도우 복원의 과정은 특정 날짜와 시간대와 설치라는 이름의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기에 어떤 영화의 장면들을 생각나게 했다. 숨겨둔 복원의 지점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문제많은 현실에 끊임없이 부딪히는 꿈같은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Abre los Ojos(Open Your Eyes / Vanilla Sky)가 그것으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이 영화는 복원의 시점을 향한 혼란스런 방황을 소재로 하고 있다. 
iPod / Windows와 Abre los Ojos가 내게 보여준 복원이라는 테마는 부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도무지 복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현실의 수많은 결과물들을 생각할 때, 그리고 그 복원이 거의 완전무결한 것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나는 자연스레 내 삶의 어떤 한 지점을 생각하였다. 이제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결코 메워지지 않는 빈 자리에 관한 것이다. 안타깝고 아쉽거나, 힘들거나 절망적이거나, 도무지 잊혀질 것 같지 않은 상처이거나 세상 어느 누구든 그런 지점 하나쯤은 다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삶에 어떤 숨겨진 폴더가 있어 복원의 꿈이라도 꿀 수 있을까. 얼마나 거대하고 상상키 힘든 시스템이 있어 그게 가능하기나 할 것인가. 하찮은 기억이 아닌 삶에 관해서라면 더 할 말이 없어 참으로 부러운 한 순간이었다.  

아이팟과 컴퓨터의 연결이 끊어지거나 이어지는 것이 삶에 있어 무슨 대단한 일일까. 생각하면 참으로 초라하게 보이는 윈도우즈의 복원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끊어진 링크를 복구하면서 그립고도 향긋한 어떤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안타까운 심정을 위로하는 상큼한 바닐라향 같은 것. 
 
 

2005. 2. 8. JJ.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