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도 쌀쌀한 이월의 끝자락이지만 샤워하고 나온 아침, 거실에서 만난 햇살은 따사롭기만 하였다. 게으른 눈이 봄의 기운을 찾아 여기 저기 둘러보다 거실 한 구석에 놓여 있는 난 화분에 쏠렸다. 사실 난초라는 식물 잘 모르고 그 꽃에 관해서는 더욱 무지하다. 꽃대는 짙은 갈색에 시들어버린 줄기 같은 느낌인데 어리석은 눈은 카메라를 들이대고서야 그 꽃의 선이 빼어남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나 아즈텍의 부조를 보면 모든 인물들이 하나같이 옆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것은 옆모습이 제일 아름답다고 여긴 까닭이라고 했다. 오늘 사진 찍으면서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멀리서, 가까이서 여러장 찍은 결과 역광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였다.

난을 친다 했던가. 늘 내 마음에도 난 하나 있다고, 내 마음 깊디 깊은 곳에 난 하나 있어 이름하여 "심란"이라고 했다. 어느 작목반원의 형편에 맞지 않은 형편없는 취미생활쯤이라 하였다. 난을 치지도 평정하지도 못한 마음이 부러운 듯 바라본 꽃, 조금 시들어 빛깔 더 좋아 보였다.
 
 

2005. 2. 20. JJ.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