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내 지루하고도 지리멸렬한 삶에 두 개의 큰 자극(刺戟 그리고 또는 磁極)으로 작용해온 예술가가 있었다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다. 이들은 문학이라는 토태 위에 어느 정도 비슷한 지역적 정서로 비슷한 시대를 살았으나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떠한 직접적인 교류도 없었다. 또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거의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다만 이들 사이에는 내가 아는 몇 가지 링크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네루다이다. 보르헤스는 어느 대담에서 "비록 정치적으로는 입장이 좀 다르지만" 네루다의 문학적인 성취를 인정한다고 하였고 이들 사이에는 실체적인 교류가 존재하였다. 
비니시우스의 경우에는 외교관이라는 직분에 종사했던 시인이라는 점에서 네루다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에게 헌정하는 소네트를 주고 받았는데 쌍빠울루에서 이루어진 어느 콘서트에서 비니시우스는 비올레따 빠라의 노래를 배경으로 그 시를 낭송하였다.
이들의 또 다른 연결점은 아스또르 삐아솔라인데 삐아솔라는 보르헤스의 시 "순환하는 밤"을 테마로 해서 <탱고 아빠시오나도 : 서투른 무용수와 순환하는 밤>이라는 앨범을 발표하였고, 비니시우스는 삐아솔라의 콘서트를 보고 그의 음악에 반하여 무대로 여러번씩 장미꽃을 보냈다고 했다. 브라질이 월드컵에 우승하던 해에 이루어진 비니시우스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콘서트 앨범에는 아스또르 삐아솔라와 함께 찍은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보르헤스와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 사이를 연결하는 또다른 미약한 링크 하나를 들자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있다. 그는 보르헤스와 정치적으로는 다른 쪽에 있었으나 보르헤스의 칠레에서의 연설에 관해 그를 충분히 변호하였으며, 그 자신의 단편과 에세이에서 보르헤스에 관한 숱한 언급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한편 마르께스는 <난 전화를 걸려고 온 것뿐이에요>라는 단편에서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를 인용하고 있는데, "사랑은 계속되는 한 영원한 것입니다"라는 대목이 그것이다.¹⁾

이러한 간접적인 공통분모 이외에 많은 부분에서 보르헤스와 비니시우스는 매우 다르거나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보르헤스는 개인적이고 소심하고 금욕적이며 파퓰리즘을 경계하였고, 비니시우스는 많은 시인과 가수들과 교류하며 자유분방한 삶을 향유하였으며 남미 특유의 사회적 의식을 조금 갖고 있었다. 
비니시우스는 맥주를 마시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하였고, 보르헤스는 강연회에서의 부끄러움과 어색함을 극복하기 위해 포도주를 조금씩 마셨다고 한다. 도서관장(보르헤스)과 외교관(비니시우스)이라는 직업적인 차이도 이들의 성격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단면이다. 
보르헤스는 도서관과 불교와 책을 좋아하였고 비니시우스는 위스키와 여자와 자연을 사랑하였다. 꿈과 환영과 수많은 책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켠에서는 낭만과 탐닉의 자유로운 지평이 펼쳐지기도 했다. 
보르헤스는 페로니즘을 혐오했는가 하면 독재체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심하였고(피노체트가 주는 훈장을 받기도 했으나 칠레에서의 그의 연설에 대해선 보르헤스를 두둔하는 의견도 꽤 많다) 비니시우스는 수도 이전의 시대에 조빙과 더불어 "브라질리아"에 관한 심포니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 사람은 오랜 세월에 걸쳐 눈이 멀었고 한 사람은 볼록한 배에 머리 벗겨진 할아버지가 되었으나 그들의 삶의 행로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공히 일본에 관해 호감을 갖고 있었던지 보르헤스는 말년에 일본계 비서였던 마리아 고타마와 결혼하였고 비니시우스는 "히로시마의 장미"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결혼에 관해서라면 보르헤스는 매우 상징적인 것이었던 반면에 비니시우스는 적어도 여섯번은 결혼식을 올렸다.

시는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는데
보르헤스가 내게로 왔네
슬픔이 없는 쌈바는 좋은 쌈바가 아니라 했는데
그것이 주는 즐거움을 먼저 알게 되었네

그다지 공통분모가 별로 없는 두 사람이어서 그런지 가끔은 이들의 이미지를 합쳐서 하나의 인물처럼 그려보게 되는데 어떤 음악, 어떤 문학적 비전이 그 속에 들어 있을지 상상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알렙의 환영이 담기어 있는 복잡하고도 환상적인 곡조, 보르헤스를 위한 쌈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와 바이아의 설움이 함께 어우러진 시, 가우초와 쌈비스따를 위한 밀롱가, 쓸쓸한 궁전 ㅡ 뜨리스떼 레 로이에서 이루어진 쌈바와 보싸노바와 탱고의 향연, 이빠니마의 소녀가 해변을 거닐 적에 불었던 향긋한 바람의 비밀과 모래알들이 만들어낸 곡선과 그녀의 웃음을 따라 넘실대던 파도의 미세한 떨림까지를 기억하는 어느 비극적인 천재의 이야기, 꼰스뚜시온 광장의 저린 심정을 생각나게 하는 느릿한 곡조의 노래...
그것은 두 예술가의 단순한 결합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두 갈래의 오솔길이 있는 정원이 하나이면서도 미로처럼 뻗어가는 원주로 바뀌는 것을 본다. 그리고 아주 작은 한 조각이라도 내 상상을 그 이름에 맞추고 싶어진다. 가능한 한 정확하게. 

그 복잡한 인물의 본명은 <비니시우스 데 보르헤스 다 네그로 이 브랑꾸 Vinicius de Borges da Negro y Branco>이며 "흑과 백에서 유래한 보르헤스가의 비니시우스"란 뜻을 지닌 이름에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가 함께 사용되었다.

그리고 내 꿈의 형상들 속에 
마치 나처럼 수많은 존재이기도 하고 
동시에 아무도 아닌 당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 보르헤스
 
 

2005. 4. 5. JJ.Lee ⓒ / 2008. 9. 3. 수정
 

1) <Soneto de Fidelidade>의  한 구절이다 : 
posto que   chama / Mas que seja infinito enquanto dure. (since it is flame / But be infinite while it la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