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안에 잠들지 않으면 왜 누워 있지?"

길지 않았던 삶을 에스페란토와 제주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비 연구에 바쳤던 석주명(1908∼1950)이 했던 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 1983년쯤, 어느 대학의 국어과 교재를 통해서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에세이와 시, 그리고 단편들이 실려 있었지만 나는 유독 '나비'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참 무덤덤하고 단순하였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글에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거의 십년쯤이 흐른 뒤 생각지도 못한 책에서(틀림없이 내 책꽂이에 있는 책인데 도무지 찾아낼 수가 없다) 앤드류스 탐험대의 일원으로 공룡 화석을 찾아 몽고를 탐사했던 모리스가 우연히 들렀던 개성에서 그의 표본들을 보고 세계 학계에 석주명을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읽었다.
그에 관한 나의 지식이며 정보라는 것은 그 정도로 단편적인 것이었음에도 석주명이라는 이름은 늘 내 마음 한켠에 남아 있어 가끔 생각이 났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그들 남매의 인연이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 되어 더 저린 심정이 되었다.
그의 누이동생이 유고를 정리하여 낸 어느 책의 서문도 생각난다. 마음이 담긴 그 글도 꼭 석주명의 문체를 닮은 듯 단순하여서 더 좋았다.

그저께신문을찢어버린
때묻은흰나비¹⁾

날개짓은 늘 버겁다. 선사시대에는 1m가 넘는 거대한 나비도 있었다던데 그들의 꿈은 그들의 큰 날개 만큼이나 가쁘고 버거웠을 것이다. 마리포사의 예쁘장한 어감에서 선사시대 나비의 거대한 날개짓까지, 바람처럼 자유롭기를 꿈꾸었던 빠삐용에서 장주의 호접몽까지 삶의 날개짓이라는 것이 참 터무니없이 짧고 허망한 것이기도 해서 나비는 더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Hestina Japonica Seoki와 Seokia²⁾라는 학명이 아니라고 해도 이념과 전쟁의 틈바구니를 위태롭게 날다 스러진 그의 이름 또한 내게서 쉽사리 잊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석주명 때문에 또다른 책 하나를 찾아 책꽂이를 뒤졌으나 보이질 않았다. 나비에 관한 글이 있는 헤세의 책을 잃어버렸으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 나비 금세 내게 다시 날아오게 되어 기쁘다. 
그리고 나비 이야기라는 나오지도 않지만 마지막 두 줄에서 자연스레 나비를 생각나게 하고 수많은 다른 나비의 이미지들을 이어주는 '효과'를 지닌 당시 한편 잠시 돌아본다. 나도 나비가 나오지 않는 나비의 꿈을 밤낮없이 꾼다. 
― 5분 안에 잠들지 않으면 왜 누워 있지?³⁾

기나긴 밤 온통 맑은 비파소리
서풍은 푸른 담쟁이덩굴에서 이네
희미해지는 반딧불은 이슬에서 잠을 자고
철 이른 기러기는 은하수를 건너가네
높디높은 나무들은 새벽녘에 더욱 무성해 보이고
먼 산은 비 개자 더욱 또렷해지네
회남 땅에는 잎사귀 지기 시작하니
동정호에는 물결 일겠지⁴⁾
 
 

2005. 5. 6. JJ.Lee ⓒ
1) 산촌여정, 이상
2) 석주명을 기념하여 일본학자들이 특정의 나비에 붙인 학명.
3) 초가을, 허혼
4) 본래의 이야기는 금세 잠들지 않을 바에는 부지런히 움직이라는 뜻이었다만...
5) 한때 이작자 미니멈 홈피의 아이콘으로도 사용되었던 나비 그림은 이작자 여인숙의 '건물주'인 에셔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