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1일 담배를 끊었다. 
벌써 몇 년째인지 브라질 음악을 듣고 또 들었고 별로 좋아한 적 없었던 몇몇 장르가 '즐겨 찾기 폴더'가 되었다. 보싸노바도 좋고 오래된 좀 촌스런 쌈바곡에 대해 각별한 느낌이 있다. 
요즘 들어 꽤 늦게까지 깨어 있곤 하지만 예전처럼 마음놓고 늦잠을 잘 형편은 아니다. 빚은 거의 청산이 되었고 작년엔 주식으로도 그럭저럭 괜찮았다.(올해는 제자리 수준이다.)
청국장 가루, 과일, 물, 싱거운 음식, 우유 같은 것과 조금 친해졌고 책은 몇 장만 넘기면 스르르 잠이 들곤 한다. 그 사이 읽은 것이라면 당시집 십수권, 필립 k. 딕의 단편집 네권, 그리고 국내에 발간된 보르헤스의 거의 모든 책일 것이다. 체스트턴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 다섯권은 아직 절반 정도 밖에 보지 못했고, 어떤 책은 책장 속에 그냥 잠들어 있다.
정치에 관해서는 좀 더 많은 회의와 환멸을 경험하였고, 세상의 어리석음과 나의 어리석음 사이에서 시대는 대개 나의 어리석음에 더한 부끄러움을 보태 주었다. 정치와 이념에 대한 관심만 넘쳐날 뿐 의식도 없이...

지난 2년 반 사이 더 이상 새로운 노래를 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던 두 사람이 새 앨범을 내었다. JJ.Cale과 Donovan이 그들인데 케일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도노반은 형편 없었다.
거의 매일 삼십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일주일에 서너번, 두어시간씩 산길을 걷고 있다. 별로 다르지 않는 하루 하루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이 그 속에 있다.
그 사이 더 많이 외톨이가 되었고 무리에서 떨어진 짐승의 심정을 저리도록 깨닫고 있지만 '와이어리스 브라'를 벗어던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디지털 카메라와 아이팟, 노트북과 티볼리 라디오와 넉넉한 용량의 하드디스크가 내게 와서 약간의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 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고맙고 과분한 것일테지만 그것은 또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들에 관한 증거이기도 하다.

20년간 담배를 피웠었고 단 한번도 담배를 끊고자 시도한 적이 없었다. 어느 하루도 담배 피우지 않은 날이 없었다. 담배 끊기 직전에는 세갑씩까지 피웠으나 단 한번 결심으로 담배를 끊었다. 禁煙인지 禁戀인지 의외로 나의 사랑은 시시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담배 같은 존재였을테다.
'작가주의' 좋아하는 어떤 '영화로운' 인물이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둥 다른 유전자를 가졌다는둥 하는 인터뷰를 몇번 본 적이 있다. 그에게는 그것이 대단한 자부심일 수도 있겠으나 더 이상 나는 아니다.
생활의 대부분이 '남들과' 비슷하게 되었고 그 결과 어느 정도 '인간'이 된 부분도 있지만 글과 나 자신에 관해서라면 별로 비전이 없어 보인다. 지난 2년 반 동안 1월에서 12월까지 '月'을 테마로 한 시를 써왔으나 그 소박한 시도조차도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그릇된 그릇, 간장 종지 같은 용기에 관해서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 이미 가능성이 희박한 것들도 꽤 있으나 ― 가능한 한 남들과 더, 더, 더 비슷해졌으면 하는 것이다.
 
 

2005. 6. 4. JJ.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