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지 않은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꿈이 많은 봄날마저도 그냥 그렇게 지나갔나 보다. 
나는 영화를 특별히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람은 아니고, 또 그런 영화를 즐겨 보는 편도 아니다. 기억에 남아 있는 영화들 가운데도 케이블 방송에서 우연히 봤던 것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에드워드 노튼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어쩌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어메리컨 히스토리 X>라는 영화에서였다. 인종차별주의자로서 비슷한 사람들의 영웅이 되었던 주인공이 감옥에 다녀온 후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꽤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
<25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이 영화는 아예 처음부터 본 것도 아니었다. 마치 두서없는 꿈처럼, 몬티라는 주인공이 하룻밤만 더 자고 나면 교도소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나도 그 꿈(?)으로 들어선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스토리를 잠시 옮겨 보자면...
"집안에 숨긴 마약으로 해서 경찰에 잡힌 몬티는 아버지의 보석신청으로 일주일간의 자유를 가지게 된다. 7년의 유형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해서 그는 감당키 힘든 절망에 빠져 있다. 자신의 범행을 경찰에 알린 사람이 자신의 애인이라는 소문도 그의 괴로움에 일조를 한다. 한시간 한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의 불안과 고통은 가중되고 친구와 억지싸움을 벌여 얼굴이 엉망이 되는 대목에서 절정에 이른다. 결국 감옥으로 가야 하는 날이 왔는데..."

교도소를 향해 그를 태우고 가던 몬티의 아버지는 엉뚱한 제안을 하는데 아무도 모를 곳으로 달아나라는 이야기였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혀 다른 도시에서 아버지와 헤어진 몬티는 그곳에서 새로운 직업과 새로운 이름으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직장도 구하고 거기서 다시 옛애인(내츄럴)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행복을 찾는다. 그의 아버지는 얼마나 멋진 선택을 그에게 마련해준 것인가. 그는 늙어서 손자들을 불러모아놓고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털어놓는다.
조신의 꿈이었을까, 이생의 꿈이었을까. 영화는 그렇게 '영화로운 해피엔딩'으로 가는가 했으나 화면은 다시 아버지가 교도소를 향해 몰고 있는 차 속에서 졸고 있는 몬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어쩌면 그의 길고도 짧은 꿈은 영화 <브라질>의 샘 라우리가 최후에 꾸는 꿈과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꿈속의 연인과 즐거운 여행을 떠나지만 사실은 그는 체포되어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교도소를 향해 적막한 국도를 달리던 몬티의 '영화로운 꿈'이 가진 달콤함과 쓰라림이 어떠한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어떤 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의 테마가 그 속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꿈을 꾼지 너무도 오래인데 매일처럼 그 길 위를 달리며 그렇게 꿈을 꾸는 것이다. 
꿈을 꾸는 꿈을 꾸면 인간은 꿈에서 깨어난다던 노발리스의 이야기를 바꾸어 말한다면 꿈에서 깨어나는 꿈을 꾸면 꿈을 이어나갈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몬티는 강을 오르내리는 배를 바라보며 저런 것이 진짜 사는 것이라고 했다. 나도 거의 그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새벽에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또 다른 자라는 것을 안다. 때때로 아마 진실된 것일 작고 덧없는 기억들이 나를 놀라게 하곤 한다.
ㅡ 세익스피어의 기억,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2005. 6. 5. JJ.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