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누군가 <다 녹은 초콜렛>에 관해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게으른 눈 아프게 하던 팔월의 열기'와 제목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게으른 눈'은 또 무엇인지 등등. 사실 그렇게 물으면 참 할 말도 없고 답하기도 어렵다. 수많은 잡다한 죄를 지었으되 자신을 제대로 변호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잡범처럼 나는 어떻게 조목조목 변명을 둘러댈 수 있을까. 또 형상은 사라져도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음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심에도 결 있는지 
게으른 눈 아프게 하던 팔월의 열기 
마음 없음 또한 내 마음이어서 
무너진 것들이 만들어낸 
그립고도 달콤한 형상 
온몸이 지리도록 나는 달았더라

이 시는 '무심결'과 '마음 없음'이 짝을 이루고 '눈을 아프게 하던 열기'와 '무너진 것들이 만들어낸 형상'이 쌍을 이루었다. 마음도 없는데 나는 또 그렇게 달아올랐고...

몇 줄 안 되는 짧은 시이지만 그 속에는 나 자신의 경험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는데 하나는 '형상을 잃어버린 초콜렛'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 녹은 초콜렛과 조금 유사하지만 전적으로 같다고 하기에는 불분명한 상황에 봉착한 삶 ㅡ 그러니까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해 한여름의 열기는 그 모두를 내게 보여주었다. 나를 숨가쁘게 하고 초콜렛을 녹여버렸던 삼십이도의 기온에서부터 많은 것을 꿈으로 만들어버린 천 몇 백도의 열기까지를.
하지만 시에서처럼 그 둘이 비슷할지는 참으로 알 수가 없어 내 어두운 눈은 또 가끔 아프다. 그리고 그 아픔의 느낌에 관해서라면 나는 그저 게으르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이 무디어진 지금에 와서는 더욱 그러함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는 일, 정말이지 터무니없이 게으르고 죄많은 이... 작자.
 
 

2005. 9. 26. JJ.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