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산해경(山海經)이란 책은 단순하고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럽거나 엇비슷한 것들의 반복적인 모음집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그 책은 나름의 진가를 인정받아왔고 어떤 이는 극단적인 믿음으로 그것을 사실의 기록으로 받아들였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오직 신화와 전설로 생각하였다.
아마도 산해경은 그 둘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을 것이다. 해외서경의 형천에 관한 기록에서 보듯이 산해경은 역사를 상징화시킨(전장에서 죽은 장수에 관한 전설 ㅡ 목이 잘린 그는 창과 방패를 가지고 춤을 춘다) 사례도 꽤 많이 갖고 있는 듯 싶다.
사실 그 책에는 희미하게나마 우리 선조들의 삶도 기록되어 있으며
그것은 '예', '맥'이라는 글자가 등장하는 존재나 부족들과 그들의 빼어난 활솜씨를 통해 심증을 갖도록 한다.

사회 문야의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친 그 책의 방대한 힘은 서구와 이방의 지역들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정확히 말하자면, "상상동물 이야기"가 아니라 "상상의 존재들에 관한 책")와 비교해서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보르헤스는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와 <산해경>에 자신의 지식과 상상을 보태어 그 책을 만들어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몇몇 시인들 역시 산해경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내기도 했다.

산해경의 많은 생물들 가운데 특히 사람을 닮은 모습들에는 꼭 '국(國)'이라는 글자가 따라 다닌다. 어쩌면 그것은 글자 그대로 나라의 이름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그곳에 사는 생물의 이름도 그대로 붙인 것처럼 보인다.
관흉국 역시 그 가운데 하나로 지극히 고통스럽고 불편한 형상을 지닌 생물의 이름이 그것이다. Yes의 노래는 Owner of Lonely Heart는 외로운 마음도 부서진 마음보다는 낫다고 했는데 뚫린 마음의 형편은 어떠한 것인지 생각해 본다.

관흉국(貫匈國)이 그 동쪽에 있는데 그 사람들은 가슴에 구멍이 나 있다.
혹은 질국의 동쪽에 있다고도 한다.
ㅡ 산해경 해외남경

주치중의 주석에 의하면 관흉국(貫匈國 또는 穿匈國)은 성해의 동쪽에 위치해 있고 가슴에 구멍이 있어 존귀한 이는 옷을 벗고 비천한 것들로 하여금 대나무로 가슴을 꿰어 들고 다니게 한다고 했다. (함께 수록된 그림에도 마치 가마를 매듯 해서 '구멍 없는' 사람 둘이 관흉국을 들고 가고 있다.)

가슴에 구멍이 난 고귀한 존재라니, 또 하필 그곳을 꿰어서 들고 다닌다니 (타인의) 쓰라림까지도 귀히 여기는 것은 더욱이나 귀하고 드문 일이어서 조금은 배워야 할 좋은 습속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귀한 분들'의 가슴이 그런 형편이라면 그가 말한 '천한 것들'의 가슴에는 보이지 않는 더 큰 구멍이 뚫려 있을 것이다.
만약 오늘날의 여행자가 관흉국을 다시 찾아 간다면 가슴 뚫린 사람들을 지고 다니는 더 큰 구멍 뚫린 사람들의 나라에 관한 기록을 갖고 올지도 모른다. 또한 관흉국은 이름 그대로 국가 권력의 횡포에 관한 합당한 상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산해경의 많은 기록들이 그러하듯 그곳은 세상 안의 또다른 세상일 수도 있고 우리가 매일 매일 맞딱뜨리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비천한 이의 밤은 더욱더 길어...

흔적을 지우려는 발이
더 큰 흔적을 남겨 놓을지라도
오늘밤 진흙 이불을 덮고
진흙덩이와 자고 싶다
넌 어디서 왔냐?
ㅡ 산경(山經)을 덮으면서, 황지우
 
 

2007. 4. 28. JJ.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