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크족 인디언은 고소공포증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K씨는 공포의 극복 그 이상의 것을 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을 믿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믿는 것을 믿었다고 해야겠다. 그는 믿음의 힘을 시험해보고자 했다. 그는 허공을 걸을 수 있음을 보이고자 했다. 
K씨 자신이 발을 디딘 공간이 허공이 아니라고 '절대적으로' 믿는다면 결코 추락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K씨의 정신의 벽돌은 어느덧 금강석과 같은 확고함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는 빌딩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굳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허공을 걷는 느낌을 새겨가며 12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그리고 비상구를 통하여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집나간 아내를 찾아달라거나 떼인 돈을 물어달라거나 실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릿광대짓을 하는 얼빠진 사람은 결코 아니었기에 조용한 이곳을 택했다. 

옥상의 난간 앞에서 그는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이 앞에 허공이 있는가 ― 결코 아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단단한 공간이다. 

그는 드디어 절대적인 상태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순간에 도달하였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는 허공 ― 아니 징검다리보다도 든든한 그 무엇인가를 딛기 위하여 발을 내밀었다. 

무게 중심이 옥상의 바깥으로 쏠리는 순간에도 그의 '절대적인 상태'는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왼발 마저도 옥상의 바깥으로 내밀었다. 

그는 떨어졌을까. 아니다. 결코 그러하지 않았다. 그는 그 자신의 신념으로 남들이 추락하리라 믿는 공간에서 결코 추락하지 않았다. 
그의 신념은 항성의 핵 만큼이나 견고한 것이었다. 

― 그리하여 K씨는 죽었다.

그의 몸이 저 아래 바닥을 향하여 기울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기울어짐을 믿지 않았으며, 거꾸로된 몸이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순간에도, 뼈가 부서지고, 몸이 으스러지고, 유혈이 낭자한 채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견고한 허공을 딛고 당당히 서 있었다.
 

1998.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