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은 아직 잠들지 않았고 내가 있는 곳은 너무도 답답하다. 이곳에 갇힌지 벌써 보름은 된 것 같지만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그동안 나는 목욕도 한번 하질 못했다. 내 몸은 상처 투성이고 마음은 갈갈이 찢겨졌다.
이렇게 오래도록 캄캄한 곳에 갇혀 있는 것만으로도 심히 괴로운 일인데 어제는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다. 주인이 문을 잘못 닫아 내 팔이 문에 끼어버렸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그냥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자 나는 곧 문을 열고 팔을 빼내었다. 이제 겨우 살 것 같다. 겹질러진 팔에 깊은 상처가 생겼는데 언제쯤이나 아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주인은 여전히 무심하고, 내게는 안중도 없다. 
내 팔 뒷쪽의 장식품 하나가 떨어진지 오래지만 그것도 챙겨주질 않으니... 

곧 그가 돌아올 시간이다. 나는 그가 나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상처가 깊지만 다시 팔을 문에 끼워야 한다. 그래야 주인이 놀라거나 날 의심하지 않는다. 아파도 어쩔 도리가 없다. 주인은 방을 들락거리며 골몰하고 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의 삶을 다 보아온 나로서는 그에 대한 애정과 이해도 깊지만 원망스러움도 크다. 여전히 내 팔의 아픔에조차 그는 관심이 없다. 그는 과연 날 사랑하기나 하는 것일까, 아니, 내 생각을 내 가슴에 묻어 있는 보푸라기 만큼이라도 생각이나 하는 것일까.

하지만 주인을 보면 내 괴로움을 말할 처지도 못된다. 한참을 고민하며 새벽까지 뒤척이던 그가 이제 겨우 잠든 것이다. 나는 문을 열고 아픈 팔을 빼내어 어루만졌다. 상처는 더욱 심해져 팔이 끊어질 듯한 아픔이 온다. 나는 이대로 죽는 것일까, 이제 사라져야 하는 것일까...
주인은 긴 밤을 혼자만의 번민으로 뒤척이다 이제 겨우 잠이 들었다. 그를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들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내 팔의 고통 보다도 내 가슴이 더 아프다. 하지만 그가 잠든 동안 만큼이라도 내 아픈 팔을 쉬어야 겠다. 얼마 있지 않아 그가 깨어날 것이기에...

나는 옷이다. 그의 낡은 셔츠다. 주인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1998.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