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으로 저문 아스트란의 땅
케찰코아틀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나비야 나 대신 피 흘려다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아 그는 바다로 갔다

마야의 피라밋은 겹겹이 만들어졌다. 사실 그것은 편의상 피라밋이라 불리울 뿐 꼭지점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라도 여러 면에서 이집트의 것과는 다르다. 물론 팔렌퀘를 위시한 몇몇 피라밋이 그 속의 봉분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만. 
마야의 피라밋은 이미 만들어진 옛 신전 위에 다시 신전을 지어 때로는 몇겹의 얼굴이 본래의 모습을 가렸다. 하지만 그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누가 알 것인가.

물의 마법사들이 거닐던 연못 남쪽에는 촘판틀리의 조각이 있다. 아즈테카의 인신공양을 연상케 하는 섬뜩한 부조는 태양신이 어떤 힘으로 세상을 움직이는지를 확연히 보여준다. 토나티우의 혀가 흑요석 단검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그리고 그의 열쇠인 손톱 마다에 심장이 쥐어져 있듯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비린내를 풍기지 않는 곳, 그는 가끔 그들과 나란히 누워 꿈을 꾸었다. 그의 몸은 우슈말에 있는 마법사의 피라밋으로 갔다. 어떤 난쟁이가 하룻밤 사이에 지었다는 높다란 신전이다. 118개의 몹시 가파른 계단을 기어 오르기도 했고 짙푸른 카리브해가 그림처럼 내려다 보이는 툴룸에서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한때 앞 못 보던 내게
나비 문신 있었지
날마다 떼를 지어 네게로 가다
가슴 포개면 
후두둑 비가 되어 
쏟아지곤 했지
나에게, 나비를 당신 가슴에

그는 케찰코아틀의 나비를 연민어린 마음으로 사랑하였지만 만약 자신이 청원자였다면 분명 그 나비를 증오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쿠쿨칸 또한 케찰코아틀의 변신일 뿐이었지만 모두가 희생을 원하였다. 피가 흐르는 몸뚱이를. 
이크나톤의 일신교가 신들의 인가를 얻지 못하였듯이, 투탄카톤이라는 이름이 투탄카멘으로 바뀌었듯이 믿음은 때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말없이 실현시켜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촘판틀리에 나비의 조상을 새기고 있었다. 한 마리의 나비가 한 사람의 청원자를 대신하기를 기원했을 뿐이다. 그는 그녀의 몸을 갖는 대신 나비를 가졌다. 또다른 그녀의 몸뚱이를 손에 넣는 대신 나비를 그려넣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나비들이 그에게로 와서, 그의 나비들이 그녀에게로 가서 한 모든 것은 신전 속에 비장된 옛 신전의 윤곽을 망연한 눈으로 가늠하는 것과 비슷하다.

약간의 수고로 이루어진 의식은 어디에서나 늘 똑같은 것, 그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 또한 그 형식을 무척이나 존중하였다. 제관이라는 직분으로 하여 어쩔 수 없이.
어떤 사람은 단 한번의 목숨을 내어놓았다. 단칼에 이별의 노래를 불렀고, 어떤 이는 세상을 떠돌다 수없이 많은 이름으로 돌아왔고, 어떤 이는 아즈텍의 역사를 석비에 새겨가며 오랜 시간을 지켜만 보았다.
그는 흐뭇한 마음으로 툴룸의 성채에 올랐다. 저 꼭대기에서 너를 바라보리라... 하지만 촘판틀리에 걸리어 있던 수많은 기억들은 하나같이 사라지고 없고 이 모두가 모여서 만들어진 형상은 군데군데 뻥 뚫린 음울한 그 자신의 표정이었다. 
약간의 수고로 이루어진 것들. 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거추장스런 비취색 가면을 벗었다. 사람들이, 어쩌면 그 자신조차도 모르거나 애써 부인하고픈 진실이 있다면 그의 가면은 희미한 점 하나까지 그의 얼굴과 똑같다는 것이다. 비의 신 챠크가 가면의 신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승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연기를 내는 흑요석의 검은 거울 - 테스카틀리포카에의 기도 속에 언뜻언뜻 비치던 희미한 얼굴들, 그러나 고위의 사제들이 그녀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 
전사의 신전에 있는 착물의 상은 피에 대한 갈망 그 자체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설파처럼 끊임없이 협박당하고 있는 세게의 불안함에 대한 그들의 대답이며, 이는 어쩔 수 없는 대답이기도 했다.* 바다 저편에서는 또다른 쿠쿨칸이 태양의 신고를 갈망하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야의 별은 떨어졌네
매운 연기 속으로 나는 떠나갔네
달팽이처럼 기어 언제든 붙들 수 있을줄 알았는데
그 달팽이 채어간 검은새처럼 나는 떠나갔네
그 새를 떨어트린 화살처럼
그 시위를 가늠하던 시선처럼 떠나갔네
가쁜 숨 몰아쉬며 헐떡이며
눈물마저 방울방울 떠돌아다닐
희박한 공기 속으로
나는 떠나갔네
희박한 공기 속으로

마침내 그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모든 나비를 날려 보내었다. 제각기 다른 꿈을 지닌 나비들, 어떤 날개에는 날짜를 알려주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고, 투운 360일 위날 20일의 나비가 순서도 없이 날아 올랐다. 공룡시대의 위험스런 곤충처럼 거대한 것도 있었고, 감꽃의 향기를 풍기며 조그만 날개를 파닥이는 것도 있었다. 어떤 날개에는 알지 못할 이국의 이름들이 보였다. 때로는 나비의 온갖 빛깔 그 자체가 마음의 비밀을 드러내고 있었고, 저마다의 독특한 무늬들이 가진 수많은 사연들을 이해하기도 했다. 마침내 하늘과 바다는 나비로 가득하였고 그들의 날개짓으로 세상에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챠크가 어떤 형상으로 나타난들, 익스첼이 어떤 눈빛으로 그들을 방해한들 바다에 띄워보낸 유리병 같은 것, 언제가는 도달할 것이다.
 
 

2001. 7.
어딘가에 피어 있을 소치케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