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도서관엔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열람하지 않는 책과 기록들을 홀로 펼치고 검열하는 시간이다. 심지어는 그 안에 있는 나도 살펴보려 하질 않던 것들이다. 어떤 이가 나의 도서관을 열람할 때까지 나는 장정을 살피고 분류하고 관리하며 또 쓴다. 밤의 도서관의 닫힌 창과 문으로 수많은 책과 글자와 이야기들이 속삭임처럼 전해져 온다. 어쩌다가는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나는 가끔 길을 잃곤 했다. 어느 순간엔가 책 사이를 헤매다 보면 이것은 분명 나의 도서관이 아닌 미로가 되고 또 어느 순간엔가는 전혀 와본 적도 없는 풍경에 맞닥뜨리게 된다. 내가 일하는 도서관의 분위기와 같은 것을 찾아 헤매던 어리석음은 더 이상 없다. 그저 열람실의 분위기나 장서에서 내가 갖는 느낌이 더 소중한 것이다. 모르는 사이 출구로 나오면 나는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때로는 다 쓰러져가는 초라한 오두막 같은 서점이고 때로는 너무 어지러워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단 한번, 나로서는 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할 엄청난 규모의 도서관에 갔던 적이 있었다. 한 순간은 그 모든 장소가 나의 것인 듯 싶었으나 그 어느 곳에도 오래 머물러 있지는 못했다. 그것이 내가 밤낮없이 도서관을 지키게 된 유일한 이유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너무 많은 것은 없는 것이 되고 정확한 목록도 없는 책들을 뒤지다 보면 늘 같은 책만 발견하고 똑같은 수수께끼로 가득한 신간이 손에 쥐어져 있곤 한다. 사실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신간이 아니라 오래도록 판을 거듭해온 유서 깊은 책이다. 정든 염증 같은 것, 딱지를 떼고 싶어하는 심정 같은 것이다. 가장 깨끗한 그 책은 내가 마르고 닳도록 펼친 바로 그 책이다. 

나는 사서일까. 어떤 면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금세 나는 관장이 되고 숙직실을 서성이는 직원이 되기도 하고 그저 어느 하루 도서관을 찾은 열람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나는 몇몇 사서와 이름모를 수많은 종사자와 위대한 도서관의 관장들을 떠올리곤 했다.
그 이름이 에라스토테네스인지 에라스토파네스인지 늘 헷갈렸다. 지구의 둘레를 측정한 사나이 ― 그는 파피루스와 하지, 우물, 그리고 발걸음만으로 지구의 둘레를 알아내었다. 플렘아쓰 부부는 아틀란티스 대륙에 관한 주장을 펼쳤고 에라스토테네스가 있지만 모든 도서관장이 보르헤스가 아니라는 것이 유감스런 일이라고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도서관장은 보르헤스도 아닐뿐더러 아난존자도 아니어서 대단히 엉성하면서도 나름대로는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인 운영체계를 갖추고 있다.
대단히 유물론적으로 도서관을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1백조 이상의 장서를 갖추고 있다. 날마다 새로운 책들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한편으로 도서관은 계속 허물어진다. 장서들은 대개 낡아가지만 여기서 엔트로피에 관해 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가끔은 책의 이름들이 혼동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종이가 귀한 시대의 양피지처럼 지우고 겹쳐 쓰여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아보기 힘들 때도 있고 어느 것이 원본인지 판별하기 힘든 숱한 판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그것은 그래서 도서관에 관한 색다른 학설을 가진 사람들은 그 서가가 있는 코너를 '데자 뷔'라 불렀고 어떤 이들은 표지와 내용이 잘못 붙었거나 '부분복원'이라고 하였다. 
나는 어느 책에서 읽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관한 챕터의 화보가 틀림없는 컬러였다고 믿었다. 하지만 확인해본 결과 그것은 세라피스, 알렉산더 대왕의 흑백 그림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중앙 홀의 사진이었다. 아마도 그 화려한 시절에의 환영이 흑백의 사진에 유려한 색깔을 덧칠했을 것일 테다. 펠림프세스트(palimpsest)에서 당장 눈에 보이는 글자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도서관 내부에서 수많은 필사를 거듭하며 흉하게 낡아가기도 하고 현대적인 조판과 장정으로 전혀 새로운 모습의 책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그것은 DNA의 복제를 순찰 감시하는 분자가 부지런히 교열작업을 하면서도 100퍼센트의 완벽한 교열을 하지는 않는 것과도 비슷하다. 결국은 도서관의 대부분의 시스템은 팰림프세스트인 셈이다.

듀이의 분류체계와는 전혀 다른 어떤 완벽한 체계도 없음에도 도서관은 나름대로 잘 운영되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분류법이나 듀이식의 십진분류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도서관 전체가 지구적, 또는 우주적 역사이기도 하며 너무나 사적인 의미의 소소한 기록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도서관에서 십진분류체계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러한 분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총류부터 역사까지 서가를 나눠서 일련번호를 붙인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콜로라도의 아침"이라는 단편을 그는 알고 있다. 그 단편 속에서 왜 그리 슬픈 얼굴로 있냐고 묻던 그 목소리를 도대체 어떻게 분류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그 자체로 아련한 추억을 일으키게 하는 꿈의 기록 같은 작품이지만 그와 유사한 스토리가  다른 결말을 가친 채 다른 종류의 서가에 또 꽂혀 있다. ABC로 이루어진 그 책의 A가 DF와 결합하기도 하고 C에서 이야기나 주제가 이어지는 CDE라는 책이 존재할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없을 수도 있다. ABZ라는 책도 물론 가능하고 ABCDEFEDCBA 같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의 도서관의 주요목록에서 ABC라는 주제를 가진 책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그 목록 또한 본인도 모르는 사이 갱신될 수 있다. 따라서 듀이나 KDC 등등의 분류체계는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이토록 복잡하고도 엉성한 시스템으로 존재하는 도서관이 어떻게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지 의구심을 지닌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말하는 그 자신의 도서관을 좀더 상세히 살펴보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찾지 못하는 책이 존재하지 않는 도서관은 도서관이 아니다. 그것이 반드시 <모래의 책>처럼 불가해한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존 스튜어트 밀의 언급을 조금 고쳐서 말하자면, 자신에 관해서만 아는 사람은 자신에 관해서도 모르는 법이다.

도서관의 칸막이가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잘못된 것일까. 도서관의 담장이 오래된 전집류로 만들어졌다면 그 부실한 관리로 해서 지탄을 받을까. 최외곽의 벽을 이루는 벽돌들이 처세술과 세계의 인간상 같은 낡은 위인전기로 이루어져 있다면 경악할 일일까... 읽지 않는 책들은 하염없이 낡아서 표지만 남고 압축되고 급기야는 펼칠 수조차 없는 무엇이 되곤 하였다.
도서관의 골조 또한 아주 오래된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책은 믿지 못할 만큼 오래된 것이어서 ― 책이 나오기 이전, 믿지 못하겠지만 ― 심지어는 책을 이루는 종이의 원료가 세상에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책도 있다. 그것은 이미 도서관의 일부로 화석처럼 굳어져서 장정만 남아 있기도 하고 희미한 등표지의 자국만을 남기고 있는 경우도 있다. (도서관 종사자들이 부르는 그 별관의 조직은 '변연계'이며 가장 오래된 장서들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도서관은 여기서 그 역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도서관의 정신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토대임에는 변함이 없다. 만약 어떤 무모한 관장이 그들을 모두 처분하고자 한다면 아마도 그는 그 자신부터 그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도서관의 도면을 제대로 읽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구조가 르네 마그리트의 <백지위임>보다는 M.C. 에셔의 <상대성>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게 될 것이다.

최초의 금서 목록은 1546년에 만들어졌고 금서목록의 최종판은 1925년 교황 피우스 11세의 명령으로 간행되었다. 이 오래된 도서관은 그러한 율법을 따르고 있지는 않으나 목록은 끊임없이 첨삭되며 변화한다. 어떠한 물리적인 압수나 수색, 소각 혹은 처벌이 없이도 도서관의 기율은 자연스레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그것은 여타의 도서관과 비슷하고도 판이한 이유로 대단히 정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세상의 모든 도서관의 주인이 그러하듯, 작가가 그러하듯 저마다에게는 즐겨 읽는 책이기도 하거니와 현재 그가 수시로 열람하며 집필중인 책이 있기 마련이다. 그 책의 목차며 내용은 여전히 첨삭을 계속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주석이 포말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며 외로운 도서관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최신의 활자와 훌륭한 장정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는 가능하면 그 책이 오래 오래 남아 있기를 바란다. 글자들이 다 달아나버리는 순간에도 도서관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기에.
통속소설을 읽고 쓰고 책을 수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알콜이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고찰이나 에로티카의 고전들을 수집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도서관의 한 방에서 평생을 머문다는 것은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혼돈이 주는 아스라한 느낌을 알지 못한다면...
가끔씩 도서관에서는 모든 질서와 열람순위를 뒤집어버리는 사건들이 일어나곤 한다. 가장 낡고 인기없고 무관심했던 책들, 심지어는 사서와 관리자에게서조차도 잊혀지거나 냉대받던 책들이 최우선적 순위를 형성하는 것이다. 도서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감사'라고 부르지만 그것이 얼마나 타당한 용어인지에 관해서는 좀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할 줄 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도서관장은 히파치아(Hypatia)와 같은 운명을 지녔다. 하지만 그녀와 다른 무엇이 있다면 도서관이 사라져도 기록은 어디엔가 영속한다는 믿음이다. 히파치아의 도서관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이 아니어서 잿더미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수많은 도서관의 관장이 모두 보르헤스는 아니지만 적어도 라이프니쯔와 닮은 길을 간다. 그는 너무도 깨끗하게 자국 하나 없는 책 한 권을 기분좋게 꺼내어 펼쳤다. "정말 부지런히도 읽은 책이군." 그는 이 책의 스토리가 바뀌는 것을 막지 못한다. 하지만 가능한대로 좋은 이야기가 담길 것을 바란다.
그는 도서관을 나와 길을 걸었다. 놀랍게도 거리마다에 도서관이 빼곡이 들어 서 있었다. 어떤 도서관은 오래도록 출입이 없었던지 자욱한 먼지를 덮어쓴 채 넝쿨들로 덮여 있었고 어떤 도서관은 붉은 빛을 띠고 있었고 또다른 도서관은 역한 냄새를 풍겼다. 그리고 이 모두는 날마다 거대한 이동과 회전을 통해 낡아가고 새로워지고 있다.
숱한 도서관의 사서들이 나를 열람하고 있다. 그들 또한 관장이며 그들 스스로 작가이며 청소부이며 결코 평범하지 않은 저마다의 사서이며 유구하지는 않은 장대한 도서관이다. 유구하지 않아서 유구한 기억에 관해 그것을 말장난이라 여긴다면 그는 도서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알렉산드리아의 기억과 안타까움에 비할 수 없는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한 권의 펼쳐지지 않는 책이 될 것이다. 
어둑한 산의 정상에 도서관이 서 있다. 불이 꺼지면 도서관은 사라지고 산의 윤곽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나는 달아난 알맹이를 찾아 밤새 그곳을 서성였다. 그것만이 내가 날마다 찾아가던 도서관이 문을 닫아도, 그곳의 책을 다 펼칠 수 없음이 하염없이 안타까워도 슬퍼해서는 안될 이유다.
 
 

2002. 10-12. JJ.L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