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지 나는 도무지 차분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가 줄곧 생각해 왔으나 너무 미묘해서 글로 옮기기 힘든 어떤 순간에 관한 절묘한 포착이었다. 내 마음의 카메라의 느린 스피드로는 도무지 담아내지 못할 너무 빠른 피사체의 움직임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한 사실은 한순간 나를 냉랭한 무관심으로 이끌었으나 결국엔 나를 안달나게 했고, 안절부절 못하게 했고, 잠시도 견뎌내기 어려운 졸갑증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그래서 나는 그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그의 번역본 가운데 몇몇 좋아하는 작품을 타이핑 하기 시작하였다. 내 마음의 카메라는 별을 촬영하는 듯 한 자리에 고정된 채 밤새도록 한껏 열리어...

비록 나는 그가 왜곡하고 과장하는 타락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조금씩 조금씩 그에게 모든 것을 양도하고 있다. ㅡ JLB.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1960년 <작가>라는 제목의 시와 단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집을 출간하였는데 거기 수록된 짧은 소설들은 그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한 함축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보르헤스와 나" 또한 그런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마치 오늘의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듯이 그는 그 짧은 글에서 그들의 관계를 독특하게 설정하였고 왜곡하고 과장하며 애매한 소리만을 늘어놓는 작자에 관하여 불평하였다. 하지만 그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 관한 양도의 절차는 그의 생각처럼 녹녹한 것이 아니어서 혼란스런 와중에 그가 내가 되고 내가 그가 되기도 하고 거의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짧은 생각으로 시들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은 약간의 엇박자를 포함한 기묘한 맞물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책에서보다는 다른 많은 책들에서*, 또는 연주하기 힘든 기타의 선율 속에서 그를 발견하곤 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전해오는 밴도니언 연주에서나 누구의 것인지도, 어떤 가사를 지니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옛 노래 속에서, 나 자신이 수십년씩 느껴온 야릇한 느낌들 속에서 그를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보르헤스와 나, 보르헤스와 이작자, 이작자와 나, 보르헤스와 이작자와 나의 관계 속에서 누가 글을 쓰고 있는지에 관해서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 나비떼가 낙엽처럼 무성하게 날고 있으나 그것은 보르헤스와 델리아에 관한 그(또는 나!)의 기억처럼 명료하다. 

(이 글의 제목 또한 보르헤스가 이미 사용했던 것이지만 그가 <픽션들>에서 주장했듯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세르반테스와 삐에르 메나르의 돈키호테가 전혀 다른 것만큼이나 다른 제목이다. 그래서 이보다 더 합당한 제목은 있을 수가 없다.)
 
 

2003. 9. 29. JJ.Lee ⓒ
 
 

PS.
이것이 오타인지 아닌지 여전히 헷갈리지만 그의 번역본에 의하면 호랑이는 호랑이기를 원한다고 한다. 그럼 고양이는 고양이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좀 이상하게 들린다. 고양이 고양이기를 원하는 것은 이해하겠다만 어찌 고양이가 고양이기를 원하는 것일지, 꼬리 아홉 달린 고양이의 이야기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