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세상의 어떤 14일 가운데 하루였다. 

그저 3, 4분쯤으로 알았을 뿐, 그 노래의 길이가 어떻게 되는지는 정확히 몰랐다. 낮고도 달짝지근한 목소리가 즐거운 풍경을 그리고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잘 몰랐다. 어떤 때는 달콤하였고 또 다른 때는 지겹고 후덥지근한 느낌이었다. 가끔은 적적하고 조금 아픈 느낌이 들었고 때로는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변함없이 변해버린 다 녹은 초콜렛의 맛 같은 것, 무디어져 간다는 것은 참 재미없고 시시한 일이다.

그것은 어느 짧은 달의 평범한 하루에 관한 이야기였고, 어쩌면 그 노래의 마지막 한 줄이 지닌 소망처럼 14번의 해가 바뀌었음을 알리는 노래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여운이 조금만 부족했더라면 그 노래 자체가 2분 14초에 끝이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노래가 흐르는 동안에도 세상은 노래와 달리 이별을 계속하였다. 아니, 노래가 세상과 동떨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그녀는 어떤 그에게 이별을 알렸고, 어떤 그는 또 다른 그녀에게 이별을 알리기도 하였다. 

그녀는 덤덤하게 이별을 고하고자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일하는데 너무 바빴다. 그녀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전화 끊기를 주저하고 있었음에도 그 날은 그렇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하필이면 그날에...' 하며 씁쓸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 날이 아주 특별한 14일이었기에 그녀는 단호하게 전화를 했을련지도 모른다. 
여하튼 운 좋게도(?) 몹시 바빴던 까닭에 그는 다음 날에야 이별에 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주 길었던 14일의 노래에 대해서 말이다. 전날의 유래가 각별하다고 해서 그가 정신없이 바빴음에 관해서 그녀가 감사한 마음을 가졌을 같지는 않고, 그들은 그렇게 서서히 잊혀져갔다.

그리고 여기 약간의 추신이 있다. 
그것이 소중했던 탓인지 아니면 조금은 짐스럽게 느껴졌던 까닭인지 그녀는 오래 전에 그가 보냈던 편지,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몇몇 소지품과 약간의 책들을 몇 개의 박스에 담아 그에게 맡겼었다. 그녀는 보증을 요구했고 그는 그곳에다 사인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많은 것을 소리없이 바뀌게 한다. 그것이 보관되어 있는 작은 방은 언제부터인가 창고가 되어버렸고, 그곳의 독특한 어둠으로 하여 가끔은 시간을 분별하기도 어렵다. 비워진 초콜렛 상자랑 비슷했던 까닭일까... 이제는 그 박스와 책들 또한 창고의 일부처럼 되어 버려 아무도 그것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와 비슷하게 낡은 종이상자들이 누구의 기억이며 누구의 짐인지도 이제는 분별하기 어렵다. 

쳇 베이커가 나즉한 목소리로 노래했던 어느 하루 ― 그 날은 어떤 사제가 세상을 떠난 날이며, 새들이 발정하는 날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래된 술이 잠에서 깨어나는 날의 이름이기도 하다.
 
 

2005. 8. 4. JJ.Lee ⓒ